충성스러운 종
저는 충성스러운 종입니다.
종들의 잘못을
한 번은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운 주인님 때문입니다.
주인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은
오직 주인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피어난
어여쁜 꽃들의 얼굴을
깨끗이 씻기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저는
아침부터 허리에 수건을 차고,
대야에 깨끗한 물을 가득 담아
꽃들이 가득한 제 주인님의 정원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구부려
꽃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씻겨냅니다.
꽃들의 얼굴을 씻기는 일은
분명 손이 많이 가는 고된 일이지만
제겐 더 없이 즐거운 일입니다.
쇠별꽃, 인동꽃, 살갈퀴꽃,
보라별꽃, 자운영꽃...
꽃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꼼꼼히 닦은 후
잠시 허리를 펴고
흐르는 땀을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쑥부쟁이가
살랑거리는 바람 때문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배시시 웃고 있는 쑥부쟁이를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 틈엔가 그 바람이 다가와
땀투성이인 제 얼굴을
후~후~하고 불어주었습니다.
하아~~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
아찔해서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잠시 일을 뒤로하고
그 바람을 따라 들녘에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쑥부쟁이나 된 것처럼
바람과 함께 노닥거리는데 정신이 팔려
그만 저녁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큰 일이었습니다!
저의 잘못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둠의 이빨이
시나브로 날카로워지는 줄도 모르고
저는 어쩔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들녘의 어둠이
제 목을 물어 뜯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저는 하는 수 없이
한 번은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운 주인님에게로
울면서 달려갔습니다.
자비로운 주인님은
하루 종일 저를 기다리신 눈치셨습니다.
저는 훌쩍훌쩍 흐느끼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였습니다.
"주인님! 저의 잘못을 용서해주세요.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다하지 못했습니다."
"알.았.다.
용서를 해줄테니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도록 해라."
주인님의 뜻밖의 말에
저는 너무나 놀라 다시 물었습니다.
"용서를 해 주신다구요?
주인님은 잘못을 단 한 번만
용서해 주시는 분이잖아요?"
"그야 물론이지.
나는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만 종들의 잘못을 용서해주지."
"하지만 저의 잘못은 이 번이 처음이 아닌 걸요."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언제 또 잘못을 한 적이 있더냐?
내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
자비하신 주인님은
종들의 잘못을 용서하실 때마다
그들의 잘못을 완전히 잊어버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인님의 기억 속에 있는 저는
언제나 충성스러운 종이었던 것입니다.
흐음~
저는 충성스러운 종입니다.
종들의 잘못을
한 번은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운 주인님 때문입니다.
#Mar. 16. 2007 @ Pasadena/ 글 by 이.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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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5년 전에 썼던 위의 글이
갑자기 기억의 수면 위에 떠올라
맴맴 돌며 떠나질 않는다.
하영양이 내게 궁금한 듯 물었다.
"아빠는 일은 하지 않고 매일 공부만 하는데
어떻게 우리는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거야?"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굶기시는 법이 없어.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인 아빠가
공부 열심히 한다고,
공부 한 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나눠준다고
굶지 않게 하시는 거야."
그렇게..
무익한 종을
충성스런 종이라고 부르시는
그 분의 한 없는 자비하심 때문에
목이 메이는 날들이다.
#Apr. 11. 2012. @ Kenya 사진 & 글 by 이.상.예.
*)사진은 케냐에서 찍은 어여쁜 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