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잔칫상의 자리 선정

창고지기들 2022. 4. 2. 12:44

 

 

 

 

 

잔칫상의 자리 선정

 


예수께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초대 받으셨을 때였다. 

초대 받은 자들이 하나 같이 높은 자리를 

선택하여 앉는 모습이 예수님의 눈에 띄였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입을 여셨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the place of honor)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the least important place)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누가복음 14:8-10)

 


‘높은 자리’란 ‘영광스러운 자리’다. 

‘영광’의 어원을 통해 미루어 볼 때, 

그것이 ‘무거운 자리’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무거운 무게감은 영광스러운 자리가 

삼각형처럼 안정감이 넘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삼각형이란 일직선 위에 있지 않은 세 개의 점을 연결한 

직선으로 이루어진 평면 도형이다. 

삼각형의 안정감은 꼭짓점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통해 성취되는데, 

아마도 영광스러운 자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초대한 자, 초대 받은 자들, 그리고 초대받은 자기 자신이 

모두 동의하고 인정한 자리가 영광스러운 자리일 테다. 


내가 앉은 자리가 영광스러운 자리이려면, 

나를 비롯하여 집주인과 동료들이 예외 없이 

그 자리가 내게 합당하다고 동의해야 한다. 

비록 스스로는 앉아도 될 만한 자리라고 여겨 앉았을지라도, 

집주인이나 동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곳은 결코 영광스러운 자리가 될 수 없다. 

또한 본인이나 동료들이 인정한다고 해도 

집주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영광스러운 자리일 수 없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지 못한 자의 앞날은 막막하다. 

초대받은 곳이 혼인 잔치일지라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즐길 수 없다. 

시종일관 초상집에나 어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잔치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난 십여 년간 내가 줄곧 앉았던 곳은 선교사의 자리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몹시 앉고 싶은 영광스러운 자리일 테지만, 

불행히도 내게는 아니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내내 나는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그러니 선교라는 잔치를 즐겼을 리 만무하다.


사실, 내가 앉고 싶었던 곳은 목회자의 자리였다. 

그래서 그것을 남몰래 탐하기도 했다. 

물론, 동료들은 인정해주었지만, 문제는 집주인이었다. 

그는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높은 자리인 목회자의 자리에 앉으려 하다가, 

결국 볼썽 사납게 끝자리(the least important place)로 쫓겨나고 말았다. 

내 것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끝자리, 

그것은 선교사의 자리였다. 

끝자리에 앉는 나를 격하게 환영한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혼인 잔치는 여전하다. 

아직 신랑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한 잔치는 지금껏 지속되는 중이다. 

그 곳에 내가 있다. 

초대장을 손에 쥔 나는 나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는다. 

이제, 나의 자리는 목회자의 자리도 선교사의 자리도 아니다. 

평신도의 자리, 그것이 나의 것이다. 


부끄러움 없이 앉고 보니, 잔칫상이 제대로 보인다. 

원탁이다. 

어디가 상석이고 어디가 말석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상 위에는 음식과 음료가 이미 한 가득이다. 

아까부터 즐길 준비를 마친 나다. 

집주인과 동료들, 그리고 나까지 인정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았으니 

슬슬 잔치를 즐기기 시작해 볼까? 


일단은 말씀을 먹고 마시며 배를 불려보자. 

그리고는 뒤늦게 도착한 동료들에게 말씀을 떼어 나누어 주자. 

마지막으로 말씀의 잔을 하늘 높이 치켜들자. 

곁에 앉은 동료들과 함께 잔치의 주인을 위해, 

신랑을 위해 건배를 소리 높이 외쳐보자! 

"모든 영광과 찬송이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교회의 신랑께 있도다! 

할렐루야!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4:11)

 

 



#Apr. 2. 2022.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