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Holy Week)의 단절(abstention), 그리고 단전(disconnected power)
사순절 끝자락,
고난주간(Holy Week)을 지내는 모습은
장소와 상관없이 대부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좀더 묵상하고,
공동체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나아가 그분의 고통과 죽음을 나름 삶에 연결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단절(음식과 유희)을 실천합니다.
짧은 한 주간의 경험이지만,
실제로 고난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고난과 신앙을 연결하는데 적합한 언어들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승리와 즐거움, 번영과 풍요가 기독교 신앙과 짝을 지은지 너무 오래되어서,
고난과 삶의 어두운 부분은 마치 기독교 신앙과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고난 주간은 생각보다 풍성한 의미를 가져다 줍니다.
무엇보다도 고난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허락됩니다.
그것을 통해 순종을 배우게 되고,
나아가 온전함에 이르게 됩니다 (벧전 5:8-9).
고난이 기독교 신앙과 만나는 언어의 적합한 표현은
실패나 저주가 아니라, 온전함에 이르는 사랑의 과정입니다.
고난과 신앙의 적절한 연결을 찾지 못하면,
쉽게 다른 "다른 복음"(갈1:6)을
"진짜 복음"인 것처럼 따르게 됩니다.
또한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과 연결지을 수 있습니다.
어두움처럼 다가오는 자신의 현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시간이나 과정이 아니라,
그 어두움조차 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신비를 배우게 됩니다.
어두움 가운데 내려가신 그리스도라고 해서,
하나님의 아들에서 제외된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고난과 어두움을 생각하고
삶에 연결시키는 고난주간에
실제로 어두움을 경험합니다.
저희 집의 전기가 종전에는 이따금씩 단전되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이유는 전기 사용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저를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습관적으로 노력을 하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이것의 한 실천으로 저는 나라에서,
기관에서 내라는 세금과 각종 청구서를 받으면,
그 즉시 처리합니다.
이것은 이곳 케냐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난 3개월간 전기사용 청구서를 받으면, 그 날 오후에 직접
제가 사역하는 기관의 어카운트 오피스에 지불해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전기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서, 전기를 단절하고,
어두움 가운데 경험하게 하는 것은 정말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두움의 경험도 그리스도의 어두움을
실제로 경험하기 위한 좋은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전기가 단절된 이 어두움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이곳 케냐의 불안정한 시스템과
정상적인 이성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마음에서 받아들입니다.
마치, 그리스도가 사랑한다면,
왜 죽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나?
그냥 멋지게 우리를 구원하시고,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하지 않으시지?라는
상식적인 반문을 하지 않고,
가슴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구원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유를 따지는 것, 나와의 적실성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방식의 신비를 확신하며 쫓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저희 집 전기가 들어오길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곳 재정담당 직원에게
지난 세 달간 지불한 영수증을 가지고 가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의 답은,
"돈을 받아서 영수증을 발급해주었지만,
전기 담당 사무실에 돈을 전달하지 않고 있었다.
돈을 받는 것만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였습니다.
이제 다시 배웠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미리 저에게 직접 전기담당 사무실에 가서
지불하면 된다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다시 언제 전기를 연결해줄 직원이 도착할지는 기다려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불편한 마음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해야할 사람들, 케냐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이상 나의 관점에서 따지지 않고
상대를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을
하나님이 허락해주시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나의 사랑, 케냐사람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기준으로 따지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
어두움을 경험하셨듯이,
저도 지금 잠시 어두움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인 케냐사람들을 사랑하기에...
by 주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