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2. 3. 27. 20:53

 

 

 

 

#1. 하나님의 포커스

 

 

애굽에 유례없는 우박이 내렸다.

하진군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대박 우박’이 내린 것이다.

 

대박 우박을 된통 맞은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고백한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출애굽기 9:27)

 

 

완악하기만 했던 바로가

어쩐 일인지 자기가 잘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고백은 가짜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바로는 이번은

자기가 범죄 했다고 말했다.

허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한 일이

어디 이 번 뿐이었는가?

 

결국, 그는 대박 우박을

빨리 멈추게 하고 싶어서

마음에도 없는 고백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의 간구를 따라

바로가 원하는 대로 대박 우박을 멈추게 하셨다.

 

대박 우박이 멈추자,

물론,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자신들의 악함을 따라

또 다시 약속을 가뿐히(!) 어기고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않았다.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바로의 지적대로

그와 그의 백성은 언제나 악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토록 완악한 바로를 상대하시면서도

단 한 순간도 의롭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

 

그 분은

바로가 얼마나 교만한지,

얼마나 말을 잘 바꾸는 지,

얼마나 상대를 잘 속이는 지,

얼마나 상대방을 잘 이용하는 지 등등

그런 악한 것들에는 마음을 두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분은

아브라함과 했던 약속만을 기억하며

신실함과 성실함에 인내를 더하여

그 약속을 하루하루

착실하게 이루어가는 일에만 전념하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십 원어치의 가치도 없는 바로의 말 따위에

흥분하면서 흔들리지 않으셨다.

그저 그 분은 당신이 하셨던

약속에만 포커스 하면서

그것을 꿋꿋이 이루어가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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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mitation of God

 

 

 

지금 나는 각성의 단계

(Recognition and Rejection State) 위에 서있다.

폴 히버트가 이야기 했던

문화 충격의 제 2 단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폴 히버트에 따르면

각성의 단계는

대략 6개월 때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2달 반 만에 찾아왔다.

(비자 문제 때문에 더 일찍 시작된 듯.^^;)

 

케냐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심지어 매력적으로 보이던

관광객의 단계가 끝장나버리자,

케냐는 어느새 ‘애굽의 바로’로 둔갑을 해버렸다.

 

 

 

UNSTABLE!

 

예고도 없이 느닷없이 나가는 전기,

제 멋대로 끊어져 버리기 일쑤고

게다가 속도도 오락가락 하는 인터넷 모뎀,

폴레 폴레(천천히)가 좋은 것이여~ 하면서도

돈이 되는 일이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

심각하게 훼손되고 유실된 데다

중앙 차선도 없어서 곡예 운전이 난무하는 도로,

심지어는 매일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 내는

빵 맛조차 들쑥날쑥 한 불안정한 나라.

 

없는 것은 없지만,

제대로 된 것도 없으며,

새 거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새것인 것은 별로 없는,

세상의 온갖 물건들이

덤핑으로 땡 처리되어

마지막으로 팔리는 나라.

 

아프리카와 유럽(영국)과 아랍의

뒤범벅 된 언어와 문화와 가치가

어지럽게 꼴라쥬 되어 있고,

식민 지배를 했던 영국에 대한 반감과

므준구(Mzungu;European)에 대한 호감이

양가감정으로 자리 잡은 나라.

 

그렇게 우리나라의 60,70년대 모습과

2012년의 모습이 동시에 공존하는

기괴하고도 너무나 불안정한 나라, 케냐.

 

 

케냐에 피투(被投)된 지

고작 두 달 반 밖에 안 된

핏덩이로서 느끼는 케냐는

그렇게 한 마디로 ‘unstable’이다.

 

이런 케냐가 나는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고자

이러저러한 약속을 했다가

막상 상황이 좋아지면

말 바꾸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애굽의 바로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직 핏덩이인 나는

이런 거대한 바로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여서

종종 화를 내기도 하고,

더러 비난을 위해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셨다.

하나님은 케냐와 같은 바로를 상대하시면서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비난의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당신의 역사를

성실과 인내로 신실하게 이루어가셨을 뿐이다.

 

 

 

내 하늘 아버지가 이와 같으셨다면

나 역시 그 분을 닮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내 하늘 아버지의 흉내를 내기 위해서

이전 보다 더욱 묵묵히,

더욱 성실히 인내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

그리고 어김없이 말씀 앞에 앉는다.

그렇게 나는 매일 새벽에

그 분께 예배를 드리며,

그 분의 친밀한 음성을 듣는다.

 

이후에 나는 스와힐리와 영어 공부를 한다.

 

 

"Mimi ni mwanafunzi."

(I am a student.)

 

 

나이 마흔에

나는 다시 코 흘리게 어린 학생이 되어

케냐의 공식적인 두 언어인

스와힐리와 영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때때로 이렇게 더디게 배워서

언제, 어디에다 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산처럼 몰려와 나를 압도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분은

부드러운 소리로 내게 말씀해 주신다.

 

 

“언제, 어디에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 이 순간 너는 공부를 하면서

나를 예배하고 있으니까.”

 

 

 

저녁이 되면

가족 모두가 모여 사도행전을 읽는다.

매일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정해진 본문을 읽고, 기도하면서

저녁 예배를 인도한다.

(하진군도 예외는 아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영적인 일기를 쓴 뒤에

성령의 열매에 관한 책을 조금 읽은 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성령의 열매에 관한 책을 읽었으니까.^^;)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어김없이 바로가 짖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때때로 바로가 짖는 소리는

내게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분노를 일으키기도 하며,

자기 연민이나 절망의 구렁텅이로

이끌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분은

나를 쓰다듬으시며 이렇게 속삭이신다.

 

 

“괜찮아!

저 소리는

그저 옆집에 묶여 있는

개가 짖는 소리일 뿐이야.

그것은 너를 절대로 해치지 못해.

그러니까 마음 쓰지 말고 자.”

 

 

 

잠시 후 나는

그 분이 아낌없이 부어 주시는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분이 선물해 주시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다.

 

 

 

“어린 아이들이 소꿉질을 하는 것처럼

당신의 흉내를 내면서 하루하루 살다보면

어느 날엔 간 저도 당신을 닮을 수 있겠지요?!

당신이 불안정하게 매번 바뀌지 않고,

닮기 좋게 절대로 변치 않는 분이라서

참 감사합니다.”

 

 

 

 

#Mar. 27. 2012.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