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21. 7. 30. 11:07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그 젊은 여류 화가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작품들은 첫눈에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들은 애석하게도 깊이가 없다.> 

-본서 <깊이에의 강요>중에서


평론가는 화가와 작품을 동일시한다. 

그러나 화가는 3차원적 존재이고, 

그림은 2차원적 실재이다. 

아마추어적인 혼동이다. 

그러나 수치를 알지 못하는 전문가는 

화가에게 대놓고 깊이가 부족하다는 말을 한 뒤, 

그녀의 작품들에는 깊이가 없다는 

평론 따위를 신문에 싣는다. 

그에 따른 결과는 참혹하다. 

깊이가 부족하다 낙인찍힌 화가는 

깊이란 것이 가능할 수 없는 캔버스 앞에서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무덤으로 추락한다. 

그 후 그녀의 작품에는 

전에 없던 깊이라는 것이 피어난다. 

깊이를 강요하던 전문가가 

요절한 화가의 작품으로부터 깊이에의 강요를 받았다고 

염치없이 펜을 거듭 놀려댔던 까닭이다.

 


그러나 물론 그는 다시 승리했다. 

그리고 이 승리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본서 <승부>중에서


패배해야 비로소 승리하는 승부가 있다. 

그러나 이기는 것은 일부러 지는 것보다 매양 쉽다. 

인간이 쉬운 편을 꾸준히 택해온 것은 그 때문이다. 

끝내 동네의 체스 고수는 

멋지게 짐으로써 얻는 영광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 

다만 혐오스럽게 이김으로써 공동체의 외면을 받는다. 

악착같이 이김으로써 영원히 져버린 승자는 외롭고 초라하다.

 


우주의 조개화보다 한층 더 끔찍한 사실은 

바로 우리의 육신이 끊임없이 조개 성분으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붕괴는 아주 격렬한 것이어서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끈다. 

-본서 <장인 뮈사르의 유언>중에서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말랑말랑한 아기와 비교해 볼 때 

어른의 사지육신은 갈수록 딱딱해져간다는 사실 앞에서, 

결국 죽음이란 대체로 경화되다가 완전히 경직되는 것임을. 

이러한 재료를 가지고 뮈사르는 

장인(匠人)답게 ‘우주의 조개화’라는 이론을 만들었다.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의 수천 시간을 

책을 읽으면서 보냈는데도, 망각 이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다니. 

그리고 이 불행은 나아지기는커녕 반대로 악화되고 있다. 

지금 책을 한 권 읽으며,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처음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기억력이 책 한 페이지를 기억하기에도 부족할 때가 있다. 

-본서 <문학의 건망증> 중에서


잭슨 폴록은 결과물인 작품뿐만이 아니라 

과정인 그리는 행위마저 예술에 입적시켰다. 

그리하여 캔버스는 작품인 동시에 그리는 장(場)이 되었다. 

책 읽기에 잭슨 폴록의 물감을 흩뿌려본다. 

독서의 결과물은 인간의 지식 확장과 그를 통한 삶의 변화다. 

그러나 과정에 속하는 책을 읽는 행위 자체도 독서에 포함된다. 


과정으로써의 독서가 아니고서는 책 읽기를 포기해야 부류가 있다. 

문학 건망증을 앓는 이들이다. 

갈수록 심해져가는 문학의 건망증이 내게도 있다. 

행위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독서라서 다행이다. 

지금껏 훈련해온 습관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예배처럼.

 

 

 





#Jul. 30. 2021.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