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다시 만나(manna)

창고지기들 2021. 5. 22. 10:19

 

 

 

 

다시 만나(manna)

 


그 시절 나는 잔치의 사람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빈손으로 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번번이 빈손인 그들에게

더러 화가 난 적도 있었으나, 

그들을 환대하는 것은 나의 임무였다. 

주님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거듭 명령하셨다. 

그러나 내게 있는 것은 고작 오병이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민망함으로 그것을 내어드리면, 

주께서는 보란 듯이 열 두 광주리를 남길 만큼 

풍성하게 늘 그들을 먹이셨다.

한바탕 잔치를 벌이셨다.

 

반복이 창조한 습관은 무섭다. 

모일 때마다 잔치를 준비했던 탓에, 

잔치가 아닌 모임이 없었다.

그러자 

열 두 광주리를 남기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게 되었고, 

열 두 광주리를 남기기 위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 자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그것이 모임을 지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출애굽기 16:17-18)


그러나 내게 주어진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만나(manna)다. 

그것은 남거나 부족할 수 없는 종류, 

곧 소박한 하루치의 밥상일 뿐 결코 잔치의 음식일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으로 잔치 음식을 만들려고 발버둥을 쳤으니, 

얼마나 곤고한 나였던가!

 


이제 다시 고국에 돌아와 모임을 하나 둘 심었다. 

이전의 빈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빈들이나 

차이점은 분명히 생겼다. 

더 이상 홀로 잔치를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빈손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자들이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자기 몫의 만나를 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남거나 모자람 없이 나누었다!


마태복음 14장의 빈들에서 나와 

출애굽기 16장의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분은 내게 더 이상 빈손으로 오는 자들을 위한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매일의 만나를 먹을 만큼 거두어 먹고, 

그것을 소박하게 나누라고 하셨다. 

과중한 부담감에서 놓여나니 

가벼운 편안함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여 든다.


어떻게든 만나의 양을 늘려 배불리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를 남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놓이자, 

일용할 만나를 창조적으로 어떻게 먹을까? 

즐겁게 고심하게 된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유머, 

어쩌면 그것이 묵상에 스며들 수도 있겠다. 

그동안 나의 묵상은 

얼마나 쓸데없이 고뇌에 찼었던가, 재미없게!


소박하게 먹고,

즐겁게 나눠도 남거나 모자람 없는 만나를 

다시 허락하신 당신, 

당신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May. 22.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