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저 너머에
M. 스캇 펙의 책, <그리고 저 너머에>를 읽고.
책의 논지를 나름대로 번역하면 이렇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저자는 이런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지만)는 위기에 처해있다. 편리하고 손쉬운 단순화와 그로 인한 정체(성장이 아닌)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생각과 배움을 통한 성장을 포기함으로써 호모 사피엔스는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호모 사피엔스는 단순주의(편견과 선입견)에 저항해야 한다. 모든 사고를 집중하여 개인적인 인생, 조직적인 삶, 사회적인 사건과 현상을 구체적으로 의식화하는 한편, 끊임없는 사고 활동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기를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진실은 이것이다. 우리가 불행하거나 편안하지 않을 때 또는 충족감을 느낄 수 없을 때 그래서 무엇인가를 힘들게 싸워 찾을 때, 인생의 가장 멋진 순간들의 대부분이 바로 그런 순간에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본서 중에서
인생을 부요하게 사는 길은 간단하다. 물론, 절대 쉽지는 않다. 일상적인 결핍의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역설적인 결핍의 축복이 주어지면 인생의 온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모두 거칠 때, 비로소 부요함은 총체적으로 실현된다.
잘 듣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에 최대한 집중해야 하며, 그것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사랑의 표현이다. 잘 듣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괄호 밖에 두는 훈련, 자신의 선입견, 사고의 틀 그리고 욕망 등을 잠시 포기하거나 옆으로 밀쳐두는 일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의 세계를 가능한 한 많이 경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훈련이다. -본서 중에서
생각하기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그래서 그분은 내게 말하려 하지 말고, 경청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것이 생각을 확장시켜줄 뿐만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나는 환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정신 치료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당신의 힘을 길러주려는 겁니다. 이 과정을 다 끝낸다 하더라도 당신이 더 행복해진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당신이 더 유능해질 거라는 점이죠. … 결과적으로 당신은 여기 처음 올 때보다 훨씬 더 큰 문제로 고민하면서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 당신이 이제 더 이상은 사소한 문제들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큰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쁨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겁니다.” -본서 중에서
결국, 사소한 문제를 넘고 지나 더 크고 육중한 문제 앞에 서는 것이 배우고 성장하는 인생이다. 그런 점에서 문제는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용해야 할 도구다. 자라고 성장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교재이고 과목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모든 축복은 잠재되어 있는 저주이며, 의식과 능력은 모두 고통과 뒤엉켜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말했듯이, ‘한 인간의 위대함을 가장 잘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은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이다. … 천재와 그들의 정신 건강 사이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우리 시대에 살았던 모든 위대한 천재들은 사람들이 믿는 보편적인 관점을 쉽게 버릴 수 있고,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면서,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능력이 있었다. -본서 중에서
정말 그렇다. 언뜻 떠오르는 위대한 위인들은 모두 주어진 고통을 필사적으로 이겨낸 자들이다.
나는 사색하는 사람을 조그마한 경험으로부터 그 속에 들어 있는 가치를 최대한 뽑아내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것은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경험으로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다. -본서 중에서
묵상은 일종의 의식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말씀에 비추어 뒤죽박죽인 나의 리빙 텍스트를 의식화하여 언어로 정리하는 작업이 묵상인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밝힌 또 다른 두 가지의 중요한 가치는 진실 혹은 진리에 대한 헌신과 그에 합당한 책임을 수용하는 것이다. 책임감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실은 배움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결정이다. 진리에 대한 헌신적 태도는 과학자로서의 내 일부다.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인간의 욕망과 싸워 이기기 위해 수세기에 걸쳐 채택한 일련의 규약과 절차에 불과하다. 우리 과학자들은 당장의 지적 혹은 정서적 위안보다 더 고귀한 어떤 것에 헌신하며 이러한 방법을 실천한다. 그러므로 과학은(예를 들어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과학자 개인의 자아가 방해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좀 더 고귀한 힘에 복종하는 활동이다. 나는 고귀한 힘의 표본이 신-신은 빛이고, 사랑이며, 진리이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는 거룩하다. 따라서 과학이 모든 문제에 답할 수는 없지만, 제자리를 지킬 때 가장 거룩한 학문이 될 수 있다. -본서 중에서
순종은 과학적 태도로 내린 선택이며, 순종하기로 선택한 자는 순종에 대한 책임을 갖는다. 그러므로 과학적 태도로 순종을 선택한 자들은 어떤 결과를 만나든지 불평하지 않는다. 불평은 사고하지 않고 무조건 순응하는 자들의 노예적, 미신적 행위에 따른 결과물이다.
자기기만은 스스로를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때처럼 자기 자신을 혐오스러워한다. 그 이유는 ‘그림자’가 겹겹이 쌓여 자아에 어둠과 혼란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그와는 반대로 스스로에게 정직하려는 선택은 정신적·영적 건강을 위한 선택이며, 따라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가장 사랑하는 행위의 선택이다. -본서 중에서
오 나를 사랑하시는 주여, 내 안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나는 게으름이 바로 신학자들이 말하는 원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여기서 게으름이란 육체적인 나태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또는 정신적 무기력을 의미한다. 원죄에는 또 자기도취, 두려움 그리고 자만심에 빠지기 쉬운 인간 성향도 포함된다. 이러한 인간의 약점들이 서로 결합되어 악에 기여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자신의 죄를 느끼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약점을 바라볼 수 있는 겸손함이 부족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악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전쟁은 의식이 부족하고, 통합성과 전체성이 결여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본서 중에서
겸손이란 자신의 약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 게으름, 자기도취, 두려움 그리고 자만심은 자신의 약점을 볼 수 없게 한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저런 부분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막상 치료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결코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이를 악물과 변화에 맞서 싸운다. 정신과 치료는 자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며, 우리의 자아에 진실의 빛을 비추어준다. “진실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지만, 그보다 먼저 그것이 당신을 미치게 만들 것이다”는 격언은 변화에 대한 우리의 저항감을 나타내는 말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본서 중에서
변화되길 간절히 원하면서 동시에 변화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순. 그러나 원죄 이면에는 원복도 있다. 죄로 인한 어그러짐을 온전케 변화시킬 잠재된 능력이.
그러나 당신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역설적인 신이고
그리고 당신의 끊임없는 고통보다
저를 놀라게 하는 것은 당신의 쾌활함입니다.
당신은 장난하기를 좋아하는 신이고
제가 당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당신의 유머 감각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당신은
저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제가 하느닌ㅁ의 창조물 하나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즉시 다가와서 묻습니다.
“그런데 이건 어때, 스캇?”
이처럼 저의 확신을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저는
당신이 이런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본서 중에서
당신의 유머 감각을 내게도 가르쳐 주소서!
May. 11. 2021.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