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21. 5. 1. 12:01

 

 

 

 

 

나의 애굽C


#1.


도깨비 나라와는 달리, 

이상하기만 하고 아름답지 않은 나라가 

내게는 있다. 

분명, 오년 정도 열심히 땅을 갈며 

씨를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어쩐 일인지 나는 그곳의 지명조차 알지 못했다. 

간혹 기억의 수면 위로 그것을 떠올릴 때면, 

속이 매스껍고 귓불에 땔감이라도 지핀 듯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곤 했다. 

그렇듯 역사하는 힘이 있던 까닭에 

쉽사리 유기할 수도 없었다. 

차선책으로 ‘나와 맞지 않는 땅’이라고 

캐주얼하게 불렀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2.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출 4:10, 6:12, 30)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성사시키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기로 하신다. 

그러나 모세는 이사야가 아니었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하지 않고, 

“주여,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했다. 

물론, 분명한 이유가 모세에게는 있었다. 

입술의 둔함, 그러니까 우리의 위대한 선지자 모세는 

말더듬이었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출애굽기 6:28-7:1)


막 젖을 뗀 모세를 양자로 맞이한 애굽 왕실은 

위계와 규율이 엄격을 넘어 가혹했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히브리 종의 아이가 양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살얼음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테다. 

이래저래 기죽고 눈치를 보면서 짓눌려 살아야 했던 

내성적 우울질의 모세가 말더듬이가 된 것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그런 점에서 입이 둔한 자라는 모세의 항변은 

단순히 능력 부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로 왕을 필두로 한 애굽 왕실로 인해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혹은 울화병)를 모세는 호소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여호와께서는 

“40년간 애굽에서 받아왔던 학대와 

그로 인해 얻은 말더듬증을 고쳐줄게!” 하지 않으시고, 

“너의 입술이 되어 줄 아론을 붙여줄게!” 라고만 하신다.

 


여호와와 모세의 대화가 

어쩐지 불통(不通)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출애굽에 앞서서 

모세에게는 ‘말하는 능력’이 중요했던 반면, 

여호와께는 오히려 ‘듣는 능력’이 중요했다. 

출애굽 리더의 제 일 요건은 

‘내가 네게 이르는 바(everything I tell you)’를 

경청하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스피커(speaker)는 말 잘하는 

아론을 시키면 되니까, 너는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는 

리스너(listener)가 되거라!” 하신 것이다. 

이는 말더듬이 모세의 강점이 경청이었음을 반증해준다. 

말이 어눌했던지라, 화술보다는 경청을 통해 

애굽 왕실에서 살아남았을 모세다. 

여호와는 그런 모세의 상처 안에 어려 있던 

빛과 어둠을 응시하셨고, 

상처가 빚어낸 빛을 들어 사용하셨다. 

 

 

#3.

 

마침내 때가 이르렀다. 

드디어 그 나라의 이름이 공개되었다.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져 있던 

이상하기만 하고 아름답지는 않았던 

그 나라의 이름은 ‘애굽C’였다. 


애굽C에 처음 발을 내딛었던 때는 

한창 기근 중이었다. 

애굽C의 총리였던 요셉의 강력한 요청으로 

우리는 어리둥절하면서 그곳에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가 있을 곳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가 일구고 가꿔야만 했다. 

그런데 애굽C에는 저마다의 바로들이 

저마다의 영역에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나는 

일개 ‘히브리(강을 건너온 자) 종’이었다. 

바다 건너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으로 건너온 자, 

빌어먹기 위해 자기 땅에 들어온 

가난한 유학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의 종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결 같이 오롯이 하나님의 백성일 뿐이었다. 

그들을 바로로 섬기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을 주 안의 한 형제요, 자매로 꾸준히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 앞에서 모세와 아론처럼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눴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모세와 아론 같은 나의 태도가 그들을 언짢게 했던 것 같다. 

‘감히 히브리 종 주제에 굽실거리지 않고 건방지게 굴어?’ 

그들은 자신들이 베푼 값비싼 음식에 

감지덕지하며 칭송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고, 

사모답지(사모답다는 뜻이 뭐람?) 않다고 헐뜯으며, 

병도 은혜라는 나눔에 틀렸다고 대놓고 면박을 주는가 하면, 

나에 대한 그들의 험담이 탄로가 나자 

오해라면서 갖은 방법으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떤 바로들은 가난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들의 사역을 루저들의 모임으로 폄하하기도 했다. 

급기야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자본주의의 원리로 

우리들의 모임을 낭비라고 낙인찍고는 

권력을 이용하여 공중분해를 시켜버렸다. 

우리 안에서 일어난 말씀으로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이 그들 바로에게는 없던 탓이었다.


그런 바로들의 영광이란 

내겐 고작 벽돌 몇 개를 쌓아 올려 만든 조약한 것이었다. 

연봉, 학벌, 경력, 승진, 성과 등등 지푸라기와 흙을 짓이겨 만든 

부서지기 쉬운 벽돌에 둘러싸인 그들은 진짜 왕이라도 된 듯 굴면서 

가난한 이웃들을 히브리 종 취급을 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애굽의 바로는 화친의 대상일 수 없다. 

오히려 절교의 대상일 뿐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려면, 

재빨리 손절한 후 광야로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하여 차근차근 애굽C를 떠나기 시작했다. 

먼저, 화려한 대저택에서의 

풍성한 진미로 대접받는 불편한 일을 끊었다. 

그러자 소박한 만나가 내리기 시작했고, 

성령 안의 의와 희락과 화평이 

나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했다. 

그 후로도 몇 번 홍해 앞에서 

바로들과 마주칠 기회가 있었지만, 줄곧 외면이었다. 

그러다 끝끝내 홍해는 갈라져버렸고, 

그들과의 절교는 얼씨구나 성사되었다. 

그렇게 애굽C를 완전히 떠나 광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3:21-22)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바로이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출애굽한 후로 수 년 동안 애굽C의 그들을 붙잡아 가두었던 까닭이다. 

그들이 만든 상처에 손을 대고 또 대어, 

나을 새 없이 덧나게 하면서 집요하게 그들을 원망했던 

모진 바로가 나인 것이다!


얼마 전,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나이 탓인지 회복이 쉽지 않은 중에, 

어지럼증과 이명까지 합세하여 근심을 더해가는 중이다. 

녀석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검색을 하다 보니, 

그들이 또한 울화병의 증상들 중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완악해져서는 그들을 사로잡아 가두고 

정죄한 결과물일지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혹했다. 

그런 중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

 


이는 속건제니 

그가 여호와 앞에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음이니라

(레위기 5:19)

 


“됐다! 

그동안 꾸준히 속건제를 드려 갚아왔으니, 

이쯤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주어라. 

그래야 너도 그들로부터 자유할 것이 아니냐!”

 





#Apr. 20.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