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21. 4. 22. 10:39

 

 

 

 

 

출남양주

 


그동안 나의 사회적 신분은 꾸준히 외국인이었다.

미국, 케냐, 우크라이나는 

나의 사회적 정체성을 외국인으로 분류했다. 

그러다 십팔 년 만에 귀국을 하자, 

바로는 내게 새로운 신분을 하사했다. 

서민(庶民).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부류의 사람이란 뜻이었다. 

이집트의 바로는 서민이라는 사회적 신분에 걸 맞는

고된 노동을 내게 요구했다. 

그것은 없는 살림에 거할 처소를 구하는 일이었다.

몇 달 새 놀랍게 치솟은 집값을 지켜보면서, 

서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탄식하며 부르짖는 것뿐이었다. 

그 옛날의 이스라엘처럼.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출애굽기 2:23)


히브리 종들의 고된 노동이란 

흙 이기기, 벽돌 굽기, 그리고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었다. 

토목과 건축, 

그리고 농사의 온갖 궂은일들을 도맡았던 그들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기에, 

힘없고 가난한 그들은 그저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 계셨다.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할 

능력이 없으신 여호와 하나님. 

그리하여 그분은 모세를 앞세운 

출애굽 계획의 첫 발을 내딛고야 마신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르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애굽기 3:11-12)


‘내가 누구이기에?’는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무슨 수로, 무슨 능력으로’ 바로에게 가서, 

그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탈출시킬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라고 답하신다. 

‘내가 너의 비상한 수, 위대한 능력이 되어줄게’라는 뜻이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출애굽기 4:1)


그러나 모세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집트 왕궁에서 미디안 광야로 하루아침에 내동댕이쳐진 채, 

40년을 적성에도 맞지 않는 양치기나 하면서 

장인 댁에 꾸역꾸역 얹혀 살아왔던 모세다. 

말하자면, 그는 온갖 지식과 능력과 꿈을 

모조리 거세당한 한 고집 하는 당나귀였다. 

그러나 고집으로 말 할 것 같으면, 

여호와를 당해낼 자 누구인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 지팡이가 된지라

(출애굽기 4:2-4)


지팡이는 양떼를 돌보고 인도하는 

양치기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어딜 가나 지팡이를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은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여호와를 만나는 자리에서 조차 

모세는 지팡이를 꼭 붙들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그 지팡이를 던지라 명령하셨다. 

말씀대로 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지팡이는 곧 뱀이 되었다.

깜짝 놀란 모세는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피했다. 

그 후 다시 명령을 따라 손을 내밀어 뱀의 꼬리를 잡자, 

그것은 지팡이로 돌아왔다. 

그렇게 흔하디흔한 양치기용 지팡이는 

여호와의 능력이 머무는 거룩한 성물로 변신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애굽기 4:20)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는 

더 이상 양치기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바로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는 

여호와의 권능의 도구였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를 꼭 붙들고 있는 한,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능력과 권능이 되어주실 것이다. 

비록 수시로 주저하고, 불신하고, 

실수하고,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바로의 횡포를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누구이기에, 무슨 능력으로 집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 옆에 앉은 나는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그분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치솟는 가격과 수중에 없는 비용은 

그분의 약속을 공수표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크게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그분이 다시 물으셨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이십년 가까이 손에 붙들고 있던 

고학년 어린이 묵상 원고 집필이랑, 묵상 모임 인도요.”


“그것을 땅에 던지라”


그러자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 

뱀을 혀를 날름거리면서 나를 비웃었다. 

그리고는 바로의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묵상 원고 쓰는 네 연봉이 고작 백만 원 남짓이라며? 

게다가 묵상 모임은 무상(無償)이라며? 

그 정도로는 이집트에서 한 달도 못 살 걸. 

그런데 이사를 가겠다고? 

꿈도 꾸지마!

너는 고작 한 달에 구만 원짜리 인간일 뿐이니까.”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 나는 그것을 피했다. 

그러자 그분이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고,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아라.”


명령대로 징그러운 뱀의 꼬리를 잡자 

그것은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예전의 그 지팡이가 아니었다. 

더 이상 연봉 백만 원짜리 지팡이가 아니라, 

여호와의 임재와 능력과 권능이 머무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신해 있었다!


매정한 현실은 변할 기미가 없다. 

그러나 더는 바로의 포악한 횡포에 휘둘리지 않기로 한다. 

바로가 멋대로 정해준 서민이라는 클래스를 

믿음으로 포기하기로 한다. 

바로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처럼, 

나 역시 서민살이를 강요하는 바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기어이 하나님의 존귀한 백성이 되고자 한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두 손에 꼭 쥐고서

출남양주를 하기로 한다. 

키리에 엘레이손!

 

 




Apr. 17.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