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갈대 사이
나일 갈대 사이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출 2:2-3)
아기를 끝까지 수중에 품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발각이 된다면, 왕의 명령을 어긴 죄로
가족이 멸문지화를 당했을 것이고,
다행히 발각되지 않더라도
아기는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자랐을 테다.
그러나 아기 엄마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과감하게도 아기를 나일 강가에 내던지기로 한다.
기성품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해 방수 코팅을 한 후,
아기를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둔다.
비록 꼼꼼히 코팅을 했으나,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 막 백일 쯤 되었기에
보살펴 주는 이 없이는
며칠을 버티기 힘든 아기다.
그래도 엄마는 갈대 상자를
나일 갈대 사이에 두고 모질게 돌아선다.
다만, 아기의 누이가 저 멀리서 서서
동생이 담긴 갈대 상자를 주목할 뿐이다.
적당한 때에
바로의 딸이 나일 강가에 등장한다.
갈대가 우거져 있었으니,
은밀히 씻기에는 제격인 곳이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공주는 주변을 자세히 살펴본다.
갈대 사이에 둥둥 떠 있는 상자 하나가 포착된다.
시녀가 갈대 상자를 가져온다.
공주의 마음이 호기심으로 상기된다.
선물 같은 상자가 열린다.
어여쁜 아기가 들어 있다.
갑자기 아기가 울기 시작한다.
울음소리가 두근거리던 공주의 가슴을 파고든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구나!
불쌍도 하여라!
이는 나일강의 신께서 내게 보내신 선물이니,
아이를 거두어 키우는 것은 나의 운명이리라!’
또한 적당한 때에
아기의 누이가 공주에게 달려간다.
똑순이 누이는 젖어미를 소개한다.
그 후로 아기의 엄마는 오히려 삯을 받고
자기 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젖을 뗀 아기가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성장하게 됨은 물론이다.
과감하게 나일 갈대 사이로 떠나보낸 결과,
살아남는다 해도 히브리 종밖에 되지 못했을 아기가
이집트 왕실의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다.
석 달이 되었든, 열여덟 해가 되었든
어쨌든 때가 되면 과감히 떠나보내야 하는 존재가 자식이다.
그래야 나와는 다른 존재,
다른 질감의 사람으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다.
갈대 상자를 나일 갈대 사이에 두고
모질게 뒤돌아섰던 아기 엄마를 따라가 본다.
울음을 속으로 삼키면서, 중얼거리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니, 그것은 기도였다.
“여호와여, 당신이 살아 계시다면,
레위 지파의 아기로 은인을 만나 살 수만 있게 하옵소서!”
기도는 득달같이 응답되었다.
아기의 은인은 무려 히브리 종들의 모든 사내 아기를
죽이라 명했던 바로의 딸이었다.
공주를 만났으니 왕가의 자녀로 성장하는 것이 당연하다.
석 달 같은 열여덟 해를 키운 첫 아기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갈대 사이에 두고 떠난 지 3년이다.
그 동안 아기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공주들을 만나 무럭무럭 성장해 왔다.
나와는 다른 여자 어른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이의 다름이 점점 커진다.
그것이 우리의 관계를 풍성하게 하고,
서로를 깊이 존중하게 하는 중이다.
내게는 둘째 아기도 있다.
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갈대 사이에 둘 날이 멀지 않았다.
석 달 같은 두 해를 더 키우고 나면,
그 역시 훌쩍 떠나보내야 한다.
곧 도착하고야 말 그 날을 생각하면서
나는 기도한다.
아기가 나일 갈대 사이에서 만날 은인들을 축복한다.
그들로 인하여 아기가 나와는 다른
멋지고 훌륭한 어른 남자로 자라고 성장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Apr. 15.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