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자리
모세의 자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23:2-3)
물리적으로 모세의 자리란
유대인들의 회당에 있던 돌 의자를 말한다.
그러나 보통 그것은 모세의 사역,
곧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직분을 의미한다.
예수님 당시 회당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가르치는 일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지였다.
모세의 자리에 앉은 그들의 말이 권위를 가졌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세와 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말과 행함에 있어서 어긋남이 없던 모세였다.
반면, 그들의 말과 행위 사이에는
매워지지 않는 커다란 구덩이가 놓여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예수께서는 메시지와 메신저를 분리하셨다.
모세의 자리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는 받되,
그 자리에 앉은 자들은 유기(遺棄)하라 하셨다.
목욕물이 더럽다고 옥동자까지 버리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헨리 나우웬,
장 바니에를 포함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의 글과 작품들은
창작자의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읽고 누릴 일이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그들은 분명 주의 이름으로 사역했다.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그것을 ‘불법’이라 판결하셨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을 무단으로 도용했기 때문이다.
이름에는 권세가 있다.
사기꾼들은 그 권세를 주인 몰래 도용하여
은행 계좌를 만들고, 부동산을 사고 파는 일 등 불법을 행한다.
주께서 허락한 적이 없는데도 주님의 이름(권세)을 이용하여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한 그들이다.
그러므로 제 아무리 성공적인 사역을 했다 해도,
그들에게 적당한 것은 칭찬이 아니라 형벌이다.
허나, 반드시 염두 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비록 불법 명의 도용은 명백한 범죄이나,
그것을 가지고 행한 사역 전부를
악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어리석다.
주님의 이름이 일으킨 기적과 권능이
주님을 드러내고 전파했다면,
그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듯이 불법 명의 도용자들과
그들의 사역을 분리한 뒤, 따로따로 평가하는 것이 옳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9-40)
일전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율법에 있어서 가장 큰 계명을 물은 일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답하셨다.
이에 대해 토를 달지 않은 그들이었다.
즉, 그들 역시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동일한 내용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평소 행실은 가르침과는 사뭇 달랐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태복음 23:5-7)
특정 유대인을 위한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 패션으로 스타일링하기,
잔치와 회당에서 VIP 자리 차지하기,
시장에서 랍비라 사인해주고 같이 사진 찍어주기를
즐기는 것이 그들의 평소 모습이었다.
사랑이 아니라 과시욕, 권력욕, 명예욕을 따라 살았던 것이다.
모세의 자리 앉아서 백성에게 사랑과 희생과 겸손을 가르쳤으나,
정작 본인들은 인정과 착취와 교만을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을 빼앗아
자기 전유물로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메시지로부터 분리되어
모세의 자리에서 내동댕이쳐졌다.
이제 와 모세의 자리는 내 것이기도 하다.
매주 주의 백성들에게 말씀 묵상을 나누는 까닭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나 역시 모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에 끼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래서 모세의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
검은 욕망을 꾸준히 살피는 것일 테고,
메시지와 분리된 메신저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근면히 성찰하는 것일 테다.
듣고 나눈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라 하셨다.(마태복음 7:24)
주님의 이름을 무단 도용하는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과 행실의 간격을 최소화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니, 소중한 나여!
모세에 자리에 앉되, 지혜로워라!
너의 말과 행위가 서로 엇나가는 일 없이
오롯이 하나가 되게 하여라!
키리에 엘레이손!
#Apr. 9. 2021.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