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여자 없는 남자들

창고지기들 2020. 10. 31. 11:29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 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 

당신은 연한 색 페르시아 카펫이고, 

고독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보르도 와인 얼룩이다. 

그렇게 고독은 프랑스에서 실려 오고, 

상처의 통증은 중동에서 들어온다. 

여자 없는 남자들에게 세계란 광대하고 통절한 혼합이며, 

그건 그대로 고스란히 달의 뒷면이다. 

-본서, <여자 없는 남자들> 중에서

 


<여자 없는 남자들>은 

일곱 개의 단편들로 구성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이다. 

그 일곱들 중 마지막 소설인 

<여자 없는 남자들>이 책 제목으로 간택되었다. 

이는 썩 잘한 선택으로 보인다. 

모든 소설의 화자가 남성인데다, 

대부분(한명을 제외한)의 주인공이 

‘여자 없는 남자들’인 까닭이다.


이야기 속 남자와 여자는 한 때 부부, 친구, 

불륜, 비즈니스, 연인 사이로 꽤 친밀한 관계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소원한 관계로 전환되었다. 

즉, 그녀들이 죽음, 작별, 배신, 지령 등을 통해 

그들로부터 상실되어갔던 것이다. 

그렇게 덩그러니 남은 남자들은 

프랑스와 중동으로부터 고독과 통증을 

꾸준히도 수입해 들여와 

자꾸만 얼룩진 채 살아가는 중이다.


깨진 관계의 파편 위에서 

남은 자들은 상실된 여자들을 신화화 한다. 

사라진 복수의 여자들은 하나의 거대한 단수, 

그러니까 아세라 여신이 되어버린다. 

아세라는 허기진 남자들을 거두어 

수많은 젖으로 배불리 먹여 살린 뒤 

세상 밖으로 차갑게 내보니길 반복한다. 

한 때 아세라의 젖에 취했던 자들은 

그녀와의 친밀했던 한 때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높이 받드는데, 

재밌는 사실은 그녀가 그들에게 없어져야 

비로소 경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신화화된 여자는 사실상 죽은 여자이고, 

남자들은 여신을 위해 카펫에 와인을 붓는 

전제를 드리면서 죽은 듯이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느꼈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깊은 구덩이에서 

신비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들의 선택에 

‘병’이나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를 붙이거나, 

갑작스런 인생의 변화에 ‘특별한 햇빛’을 덧댐으로써 

인생들 속에 역사하는 신비의 소행을 감추지 않는가 하면, 

아예 대놓고 미스터리한 인물을 등장시킨다든지,

카프카의 <변신>을 역 버전으로 보여줌으로써 

인생의 신비를 드러낸다.


절묘함과 유려함은 

이들 단편들에게서 느낀 감칠맛이었다. 

어디를 어떻게 잘라내고 다듬어야 하는 지를 

확실히 알고 구조를 잡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함, 

그리고 단출한 구조를 수많은 결들로 

풍성하고도 세련되게 벌려놓는 문장의 유려함은 

일품이었다. 

동네 빵집의 저렴하고도 거친 빵만 먹다가 

시내 브랜드 빵집의 비싸고 부드러운 빵을 

맛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음은 물론이고, 

역시나 하루키는 하루키구나하는, 

브랜드의 파워를 실감하기도 했다. 

덧붙여 어느 문장 하나 막힘 없이 

술술술 잘도 읽힌다는 점에서 

번역자 양윤옥의 매끄러운 번역을 

상찬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을 걸어 지날 때, 

다양한 종류 그러니까 클래식, 재즈, 잉글리쉬 팝, 

경음악과 같은 음악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그것은 꾸준하게 음악을 읽어온(!) 

작가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작은 창이 되어 주었다. 

물론, 그들 레퍼토리는 소설 속 캐릭터들의 취향일 뿐이지만, 

작가에게서 나오지 않은 캐릭터는 단 한 명도 없는 법이다.

 


“꿈이라는 건 필요에 따라 

빌리고 빌려줄 수 있는 거야, 분명히.”


다니무라의 말처럼 하바라는 

셰에라자드의 꿈(전생)을 빌려서 꾸었다. 

빨판으로 돌에 달라붙은 채 수초 사이에 숨어 

하늘하늘 흔들리는, 턱을 갖지 못한 칠성장어가 되어 

송어가 다가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렸던 것이다.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녀의 꿈을 빌려 한동안 같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이제는 깨어진 꿈일 뿐이지만, 

그래도 빌려서 꾸었던 꿈은 

손쉽게 단물이 많은 열매를 맺기도 했었다. 

 

그렇게 지금도 가끔씩 

‘그 여자 없는 여자’로서 나는

그녀를 떠올린다. 

그립지는 않아도 

무심할 수도 없는 

그녀를.




#Oct. 29. 2020.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