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
지나간다
큰 대야에 뜨거운 물을 채운 뒤 들어앉았다.
추석이 지나가면서
한기가 몸에 부쩍 자주 들락거렸던 것이다.
타이머를 맞추고, 20분 동안 스마트 폰이
랜덤으로 들려주는 노래를 들었다.
첫 번째 곡이 끝나고 두 번째 곡이 시작될 때였다.
전주의 앞머리가 코끝에 부딪히면서
콧방울이 찡해졌다.
연속 동작으로 어깨가 들썩이더니만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어낸 강을 따라 나는 어느새
케냐의 마구간 문 앞에 정박하게 되었다.
감기가 언젠간 낫 듯이
열이 나면 언젠가 식듯이
감기처럼 춥고 열이 나는 내가
언젠간 나을 거라 믿는다
추운 겨울이 자나가듯
장맛비도 항상 끝이 있듯
내 가슴에 부는 추운 비바람도
언젠가 끝날 걸 믿는다
얼마나 아프고 아파야 끝이 날까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울어야
내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내 자신을 달래
하루하루 버티며 꿈꾼다
이 이별의 끝을
두 번째 노래는 원곡인 김범수 버전이 아니라
훨씬 더 드라마틱한 더 원 버전의 ‘지나간다’였다.
개인적으로 그것은
케냐 선교 초반의 경험과 촘촘히 얽혀있는 노래였다.
당시 우리는 예비 되어 있었던 집을 빼앗긴 채
급히 마련된 곳(마구간 같은)에 살면서
거대한 바퀴벌레 군단과 치열한 전투 중이었고,
젖소들의 배설물들과 쓰레기들로 둘러싸인 환경 때문에
풍토병에 걸려 밤낮없이 긁어대느라
손톱에 피 마를 날이 없었으며,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비자 문제와
대놓고 불공정한 시스템의 학대,
그리고 현지인들의 가혹한 냉대와
창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구경하는 아이들로 인하여
에누리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남편과 자녀들이 피곤으로 지친 심신에
안식을 드리우던 그 밤, 나는 홀로 깨어 있었다.
자기 삶의 굴곡으로 해석해낸
가수 더 원의 ‘지나간다’가 이어폰을 통해 귓불을 적시자
하는 수 없는 흐느낌이 시작되었다.
행여 누가 들을까 목구멍으로 그것을 삼키면서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눈물을 연신 소매로 훔쳐댔다.
무시, 냉대, 학대.
한국에서 나는 그들과 퍽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그러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그들의 접근은 시작되었고,
케냐에 이르러서는 아예 상습이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찾아오더니만
시간이 지나자 둘씩 손잡고 번갈아 찾아왔고,
급기야 셋이 어깨동무를 하고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일도 잦아졌다.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맺은 첫 열매는
‘자기 연민’이었다.
존중과 환대와 우대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 바로 나인데
오히려 무시와 냉대와 학대를 받다니 하면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내 자신을
딱하고 불쌍하게 여겼던 것이다.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 그대로,
‘자기 연민’은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표지였다.
그나마 다행한 일은
혹독한 불행 중에도 임하는 은혜로
‘자기 연민’이 수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수치의 열매를 수확하여
일괄 폐기해버렸고,
그것이 맺힐 때마다 신속히 따서
유기하는 일을 쉼 없이 반복했다.
이후로도 무시와 냉대와 학대의 침입은 근면했다.
그 때마다 열중했던 일은 ‘자기 연민’을 노려보는 것이었고,
그들이 던지는 거짓 메시지에 속지 않으려고 애썼다.
무시와 냉대와 학대는
‘너는 그런 대우를 받아도 싼 하찮은 존재’라고
속살거리기를 쉬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평가와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지금보다는 편안해질 거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들의 거짓말에 속아지지 않았다.
그들이 판단하고 평가한 ‘하찮은 나’를
받아들일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혹자는 그것을 두고 ‘자존감이 높아서’라는
손쉬운 이유를 갖다 붙이겠지만, 글쎄다.
내가 자존감이 높았던 적이 있었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교만한 쪽이지 자존감이 높은 쪽은 아니다.
무시와 냉대와 학대 속에서도
나를 하찮게 여기 않았던 이유를 꼽자면,
역시나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으로 달려갔던 것일 테다.
말씀은 진리니까.
진리 앞에서
꼼짝 없이 얼어붙는 것이 거짓이니까.
그렇게 나는 무시와 냉대와 학대라는 상황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피난처인 말씀으로 도망쳤고,
덕분에 자기 연민과 자기 가치 절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따뜻한 물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훔치면서
나는 그 밤, 케냐의 마구간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기 연민으로 눈물 짓고 있던
케냐 선교사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시린 그녀의 어깨에 더운 손을 대면서
나는 말했다.
무시와 냉대와 학대의 시절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나 잘 지나가게 될 거라고.
울다 지쳐 잠든 그녀를 뒤로 한 채
나는 케냐의 마구간을 나왔다.
그리고 새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내게 속삭였다.
‘봤지? 지나간다니까!
그러니까 계속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거야.
그것이 사람의 마땅한 본분이니까.’
#Oct. 15. 2020.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