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here to Rest Head (머리둘 곳 없는 삶)
저는 제 인생을 마지막을 향해 가는 순례의 과정,
여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합니다.
이것은 아프리카 기독교 지도자였던
어거스틴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이 여정(journey)은 낭만적 기대를 갖고 떠나는 여행(trip)과 다릅니다.
물론 새로운 것에대한 경험과 모험을 할 수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여행은 돌아올 집과 안주할 곳에 대한 확신이 있고,
여정은 다시 돌아올 집도 언제든 안주할 공간도 없습니다.
그 길 끝에 주어질 그러나
여전히 알수 없는 안식할 곳이
마련되어 있다는 확신 밖에 없습니다.
아프리카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여정을 현실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인해서 시작된 인생의 여정이
그들에게는 처절하고 절박한 현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로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르완다에서 온 한 여성은 기독교 신앙 고백으로 인해서
한 밤중에 모슬렘의 공격을 피해 집을 떠나,
지난 15년간 한 번도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살던 집,
모든 추억이 담긴 소중한 물건들,
그리고 심지어는 출생증명서(여권)도 챙기지 못하고
떠나와서 낯선 땅 케냐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가 떠날 때 동반한 것은 출생한 지
얼마되지 않은 영양실조에 걸린 딸 아이가 전부였습니다.
그 아이는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지만,
현재는 건강하게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걸어가는 여정에는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
예수님께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눅9:58)고
하신 말씀을 새롭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를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과 실망이 아니라,
세상의 어디에서도 무엇에서도 얻을 수 없는
예수님 자신을 얻을 수 있다는
숨겨진 비밀을 삶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즉 머리 둘 곳을 찾고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찾고 얻게 되는
신앙의 숨겨진 비밀을 발견한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여인의 고백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다시 쉽게 돌아갈 수 없는
현실에 서 있는 저와 제 가정을 생각해봅니다.
자라온 고국인 한국에도,
지난 9년여 기간 열정을 다해 살아온 미국에도,
다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이곳 케냐에서는 아직 거주할 비자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 가정이 살아가는 집은
아프리카의 학생들이 살아가는 똑같은 수준의 집이고
여전히 벌레와 바퀴들이 먼저 주인이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아프리카의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가르쳐야 하는데,
책상 하나 딸린 작은 공간조차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아침과 오후에 각각 한시간씩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느라,
집에 오면 숙제하고 밥먹고 다음 날 준비를 위해
여유없이 바로 잠을 자야 합니다.
아내는 교제하고 사귐을 누리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동역자들과 단절된 체,
제한된 공간과 여건에서 외로움 가운데 지내야 합니다.
이러한 여정은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선택했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갈 곳도 안주할 현실도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머리 두실 곳에
저희도 같이 머리두기 위한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을 바라보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한되어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그 제한을 넘어서서 인생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속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주어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하고 안락한 길과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방향을 확신할 수 없다면
그 길을 알고계신 분과 동행하면 됩니다.
by 주종훈(March, 03,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