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tle by little
Little by little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나이~”
마징가 제트까지는 아니겠으나,
그 땅의 거주민들은 기운 센 천하장사로 이름을 날렸다.
아낙(거인) 으로 대변되는 막강한 족속들이
그 땅 가나안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나안은 땅 자체의 품질(젖과 꿀이 흐른다는!)보다는
거류민들의 이름값으로 부동산 시세를 바짝 끌어올렸을 테다.
불신풍조를 조장해서 문제가 된 것일 뿐,
이스라엘의 초기 정탐꾼들의 정보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아낙 족속에 비하면
이스라엘은 정말 메뚜기 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산처럼 커다란 두려움이 기다렸다는 듯이
메뚜기 떼를 덮쳤다.
아싸,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산 같은 두려움은
산 같은 믿음을 퍼 올리는 마중물이니 말이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에 대한
한 가닥 믿음이라도 붙들고 애써 용기를 냈다면
모든 것이 믿음대로 될 참이었다.
그러나 웬 걸,
그들은 믿음을 모조리 쪼개버린 후, 불평을 쏟아냈다.
그 뒤의 결과는 모두 다 아는 바처럼 무참하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좇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신7:21-22)
40년이 지났어도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아낙은 여전히 거인이었고, 이스라엘은 여전히 메뚜기였다.
달라진 것은 실낱 정도였다.
이스라엘이 믿음의 실낱을 팽팽하게 붙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벤져스 급인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을 앞두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막강한 가나안 족속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아낙 족속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고 두려운 나 여호와가 함께 하고 있으니까.
동시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한 가지 주문을 더 하신다.
가나안 족속들을 조급하게 멸하지 말고
조금씩(little by little) 정복하라고 명령하신다.
신속하게 전쟁을 마칠 요량으로
급히 서둘러 적들을 정복하며 진군할 때,
뒤에 남겨진 폐허들이 들짐승의 차지가 되어
이스라엘을 해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용’을 경계하라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중용을 요구하신다.
두려움이 덮쳐올 때는 용기를,
만용이 불타오를 때는 절제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덕목인지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한쪽으로 치우치긴 쉬워도 치우침 없는 균형은 얼마나 어려운지,
긴장과 경계와 반성과 성찰이 끝도 없이 집요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지혜가 편을 들어 주는 쪽은
최대치를 단번에 사용하는 편이 아니라
절제하여 조금씩 나누어 사용하는 편이다.
단번에 이룬 성공은 단번에 무너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성공한 자리마다 길들여지지 않는 들짐승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름은 대략 ‘오만’ 쯤이고,
다른 이름으로는 ‘멸망의 지름길’이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신 9:4)
거듭되는 성공은 착각을 일으킨다.
자신의 능력을 성공의 원인이라고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 착각은 미약하지만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해지는 법이다.
반성과 성찰의 부재로 헐거워진 성공의 울타리를 비집고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큰 것들 까지
들짐승들이 침범하여 창궐해진다.
들짐승들에 물린 자는 성공을 자기 전유물로 여긴다.
자신은 성공해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오만에 감염되고 마는 것이다.
그 날로 그가 달리고 있던 성공가도가
멸망으로 향하는 지름길이 되어버림은 물론이다.
케냐 시절에 남편과 함께 썼던 책,
<일상 성찬>이 작년에 출판되었다.
출판은 작년 일이지만,
집필은 그보다 훨씬 오래 된 5년 전의 일이었다.
그 후로 미국과 우크라이나로 이사를 다니면서,
책 쓰는 일은 슬쩍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남의 것이던 일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처음 들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아낙 족속과 같은 작가들이 득세하고 있는 출판계가 아닌가!
게다가 5년이나 지나버렸는데, 과연 다시 잘 쓸 수 있을까?’
별 수 없이 이스라엘의 크고 두려운 하나님을 붙들었다.
감사하게도 와락 붙들려준 말씀이 내게로 다가왔다.
“두려워할 거 없어.
급하게 굴지 말고, 그냥 조금씩, 알았지?”
나이 먹어서 생기는 유익이 없지 않다.
침침해진 눈, 저질 집중력과 체력,
잦은 잔병치레로 급하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급하게 굴 수 없는 내게는
하루에 고작 몇 문단 쓰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의 말씀이 보증을 서고 계신다는 것이다.
조금씩, little by little 하다 보면
결국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가 이른 것처럼
책을 갈무리할 때 역시 오고야 말 것이다.
매일 조금씩 수고를 하는 중이다.
말씀의 꽁무니를 따라
두려움에 저항하면서 노트북 앞에 앉는다.
크고 두려운 그 분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면서
글을 일고 짓는다.
오만할 틈이 없게
조금씩, 리틀 바이 리틀.
키리에 엘레이손!
#Apr. 23. 2020.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