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즌의 지팡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즌의 지팡이
하나님의 말씀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비말로 분사되어 숙주에 들러붙은 후,
그것에 뿌리박아 기어코 숙주를 죽음에 넘겨버리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말씀은 엄연한 씨앗이다.
땅속 깊숙이 제 몸을 묻은 뒤,
자신을 희생하여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각종 생명체에게 양식이 되어주는 씨앗이다.
그래서 말씀의 바늘과 실은 땅이다.
오직 땅(마음)과만 짝하는 것이 말씀인 것이다.
이것이 모세가 하나님의 규례, 법규, 계명, 율법,
곧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가나안 땅을 언급했던 까닭일 테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4:13)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대뿐일까?
모르긴 몰라도 전 인류를 통틀어
확실한 현재를 살았던 세대는 한 개도 없었을 것이다.
완료된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늘상 미완료인 것이다.
끝이 나지 않았으니 가능성도 있을 테지만,
그래서 불확실이 확실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광야의 이스라엘도 한 솥밥이다.
이스라엘의 자손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를 선포하였으니
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리하였더라
(신4:45-46)
40년 만에 다시 가나안 앞에 도착한 이스라엘.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그들은
광야시대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가나안 시대를
마중하는 중이다.
광야가 익숙한 과거 완료의 시대라면,
가나안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미지의 시대고,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는 현재 미완료의 시대다.
그러니 골짜기를 뒤덮고 있던 안개의 주성분은
불확실성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확실한 것이 일도 없는 여정이었다.
애굽에서 나오던 밤에도 그랬고, 홍해 앞에서도 그랬고,
광야를 맴맴 돌던 때도 그랬으며,
헤스본 왕 시혼이나 바산 왕 옥과 싸울 때도 그랬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으니,
두 왕과 싸워 이겨 요단 동편의 땅을
기업으로 삼게 될 것 또한 알 리 없었다.
그리고 이제, 견고한 가나안과의 격전을
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이다.
매우 지난하고도 힘겨운 전쟁들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추측은
기정사실이었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자욱한 골짜기에서
모세는 분연히 일어선다.
확실한 과거를 등에 업고 미완의 현재 위에 서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모세는 말씀을 다시 꺼내든다.
광야를 등 뒤의 그림자로 떨어뜨린 채,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우뚝 서서
가나안 땅을 향해 모세는 목청껏 말씀을 외친다.
그가 선포하는 말씀은 언제나 분명하고 확실하다.
불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신 5:32-33)
유래 없이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바이러스 코로나 19가 전 세계에 창궐한 탓이다.
그것은 물리적 파워 이상의 불안함,
곧 막연함과 불확실성으로 버무려진 공포를 빠르게 전파중이다.
거대한 침략 앞에서 힘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이름 짓기 정도다.
그것을 이름 아래 가두지 않으면
곧장 압도 되어 버릴 것이기에.
‘강제적 안식년’,
‘은둔자 훈련 기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즌’….
완연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즌이다.
주어를 약탈한 사망이 사이좋은 대면과 가벼운 터치만으로
죽일 듯 달려드는 통에 피해 달아나 숨지 않으면
쉬이 그것의 먹잇감이 되는 살육의 나날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즌이 썩 공포스럽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평강하게 지내는 편이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안위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확실한 주의 말씀이 나로 살게 하고,
나아가 내 영혼을 크게 번성케 하실 것을 믿는 까닭이다.
지나온 불확실한 세계들을 떠올려본다.
한국, 미국, 케냐, 그리고 우크라이나.
불확실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확실하지 않은 적도 없던 날들이었다.
불확실한 세계의 땅속에 묻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었던 말씀들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로 어둠속을 지날 때 드리워졌던
내 발의 등이었다.
오늘 아침도 나의 세계는 불확실의 임재로 충만하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빠져나가려면
아직도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할 듯 보인다.
그런 중에 다행은 말씀의 씨앗이 마르지 않음이다.
새벽마다 나는 그것을 마음에 받아
공책에 빼곡하게 심어놓는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하루를 고요히 행한다.
그렇게 나는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길고 어두운 골짜기를
지팡이 하나 꼭 붙들고
더듬더듬 지나는 중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Apr. 16. 2020.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