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20. 1. 30. 19:04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고.



어느 날 좀처럼 하지도 않던 가방 정리를 하다가 깜짝 놀랐다. 

발신인이 적혀있지 않은 여러 통의 편지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움켜쥐면 애정이 주르륵 떨어질 것만 같던 러브 레터였다.


그 날 이후로도 러브 레터는 꾸준히 도착했다. 

고운 종이 편지와 손수건 편지에 이어 

잡지에서 오려붙인 글씨들로 마음을 적어 보낸 편지들. 

베일에 싸인 발신인이 

같은 반 여학생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정체가 발각된 후로, 발신인은 더욱 대담하게 마음을 전해왔다. 

시, 노래, 좋은 글귀, 그림으로 빼곡하게 채운 

두꺼운 공책들을 말없이 건네주기도 했고, 

발렌타인스 데이 때에는 

거대한 사탕 바구니를 선물해주기도 했으며, 

당시 한창 유행하던 비누 공예품을 

예쁘게 만들어 전해주기도 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 일이었으니까, 

그 많던 러브 레터와 선물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수줍어하면서 제대로 말도 꺼내보지 못하던 

소녀의 모습은 기억 속에 선명하다. 

그 고운 마음은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어쩌면 그 때부터였을지 모른다. 

여인과 그들의 작품에 훨씬 더 호감을 느끼게 된 것은. 


편애도 무럭무럭 자라는 것인지, 

지금의 나는 자매들과 사모님들, 여성 시인들과 여성 배우들, 

그리고 여성 가수들과 걸 그룹들을 훨씬 더 선호하는 중이다. 

그런 점에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예외 없이 나름의 멋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 경애는 말할 것도 없고, 경애 엄마, 

경애 친구 일영와 미유, 회사 동료 유정, 

베트남 지사 동료 헬레나와 에일린,

 그리고 하다못해 <언니는 죄가 없다>의 공동 운영진인 

젖된느낌과 코브라자와 애정훠커까지 모두 사랑스러웠다. 

내게 그들은 마치 업그레이드 된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소설 속 그녀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화가 된 여전사들로서 

공격 대신 방어를 선택하고 서로 연대하면서 

아마존 같은 세상을 의연히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E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후졌다. 

그 중에서도 산주와 상수로 말할 것 같으면

치사함과 측은함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경애의 마음’과 같은 경이로운 선물을 받아낼 능력이 없어보였다. 

그럼에도 경애는 측은한 상수에게는 은혜 곧 기회를 베풀어주었는데, 

이는 아마존의 여전사에게 측은함은 용납의 대상이 될 수 있어도, 

치사함에 대해서는 얄짤없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상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겨우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본서 중에


이 문장 앞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확실했던 나의 상태가 상수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나를 놓아주려 애썼다. 

애씀의 방편은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과감하게 모래주머니 하나를 떨어뜨리자, 

주저앉았던 나는 풍선 기구처럼 조금씩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높이 오르지는 못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당장은 나아갈 여력을 얻었으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본서 중에서


경애를 기다리는 상수의 다짐에 격려의 박수를 한 박스 보냈다. 

그런 상수이기에 경애와 

어떤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도 얻었던 것이겠다. 

그러면서 나를 생각했다. 

나의 정체성 중의 하나도 ‘기다리는 자’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가 바로 나다. 

그러므로 나는 내 자신을 가지런히 해야 하며, 

끝까지 방기해서도 초라해져서는 아니 된다.


어째, 책 안에서 골라낸 문장들이 모두 상수와 관련된 것들이다. 

이것은 내가 멋지고 의연한 경애가 아니라 

엉뚱하고 측은한 상수 편에 가깝다는 방증일까?! 

그래도 산주가 아니라 상수여서 

천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ㅋ


작가 김금희의 글은 질감과 부피감, 

무게감과 속도감이 모두 적당해서 좋았다. 

그 쉽지 않은 적당함을 구현해 내다니, 

그리하여 나는 나보다 훨씬 어린 그녀를 

‘언니 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게다가 언니 씨는 소설 곳곳에 깨알 같은 유머를 숨겨놓았다가 

갑자기 빵 터트리는 데 소질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웃었던 대목은 이랬다.


상수는 그 피조라는 단어가 아주 낯설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들은 듯했는데 어디서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고 

다만 피조라는 단어는 이런 것을 막연하게 연상시켰다. 

아주 오래전 유행하던, 거리의 낙엽을 다 쓸고 다닐 듯 

통이 넓고 긴 청바지를 입고 머리스타일은 

기장의 끝을 날카롭게 자른 이른바 ‘칼머리’를 하고 다니는, 

이제 막 촌스러움에서 벗어나 요즘 말로 하면 

‘힙함’을 표출하려고 하지만 여러모로 받쳐주지 않아서 

어딘가 ‘불우’의 느낌을 주던, 

예를 들면 1990년대의 어느 풍경을. 

-본서 중에서


상수의 그 막연한 느낌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설명해주는 작가의 필력과 

‘힙함’을 표출하려던 시도가 ‘불우’의 느낌을 주는 

아이러니함을 너무 알겠는 나의 기억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폭발적인 웃음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 진짜 웃겨!


이상 기온 탓일까? 

아니면 늙어가는 탓일까? 

자주 몸져눕는 일로 인하여 마음이 지겹다. 

그래도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생소한 마음이 아니라 다행이다. 

힘들어도 거기에 맞는 마음을 알고 있으면 

괜찮다는 조선생의 말이 위로가 되어 고맙다.





#Jan. 28. 2020.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