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9. 10. 27. 21:42








묵상가여라



난제 중 하나인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내게 그리 어려울 수 없다. 

선뜻 닭이 먼저라고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대답에 근거를 대라고 다그친다면 

감사(내 의견을 존중한다는 점에서)한 일이나, 

내가 쥔 근거란 것이 

그를 만족시켜줄 리 없음을 알기에 또한 미안하다. 


진화 생물학(과학)적인 물음에 대한 

내 답의 근거는 엉뚱하게도 믿음이다. 

과학자가 조롱하듯 실소를 흘린대도 

닭이 달걀보다 먼저라는 나의 믿음은 변할 수는 없다. 

이는 달걀이 닭보다 먼저라고 믿는 것과 

다르지 않은 종류일 것이나, 그래도 나는 

하나님이 달걀보다 닭을 먼저 창조하셨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 난제에 대한 보다 솔직한 내 답은 

‘아무렴 어때?’다. 

양념 치킨도 맛있고, 달걀 후라이도 좋으니 말이다.


그들(제사장)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레21:6)


레위기는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맺기를 위한 매뉴얼이다. 

특별히 레위기 21장은 제사장이 

지켜야 할 규례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거룩하라고, 

다른 누구도 아닌 전지(全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거룩은 ‘구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엇에 대해 구별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만일 제사장이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여 거룩해야 한다면 

아마도 성경은 ‘전문성’을 강조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전문적 소양과 지식과 기술을 가진 

전문직으로서의 제사를 부각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세상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신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 때 거룩은 

절대로 제사장의 기능적 행위에 한정될 수 없다. 

제사장의 하나님께 대한 거룩은 기능을 포함하되 

그것들 훌쩍 뛰어넘는 전인격을 지향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아론의 자손들에게 제사쟁이가 아니라 

제사장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전문직 제사쟁이가 되지 말고, 

전인격적 제사장이 되라고 하셨던 것이다.


올바른 제사 절차를 따라 제사를 수행하는 것은

제사장 고유의 일이다. 

이스라엘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제사장이라 불렀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었다. 

단순히 제사를 관장하는 자를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이 잘 때나 일어날 때, 먹을 때나 씻을 때, 

가족들과 관계를 맺거나 부모나 이웃을 만날 때, 

심지어 멍하니 있을 때조차도 제사장이기를 원하셨다. 

제사라는 일을 통해 제사장이 되는 것과 

제사장으로서 제사하는 것은 다르다. 

눈에 보이는 기능적 역할은 같을지 모르나, 

보이지 않는 위엄이나 품격은 비교할 수 없을 터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는 방법이요? 

쉬워요! 

부모가 책을 읽으면 아이들도 자연히 책을 읽게 된답니다.” 


멋지게 차려 입고 TV에 나와서는 

고상하게 조언하는 교육 전문가들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엄마인 나나, 아빠인 그가 마치 업이나 되는 양 

독서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애들은 

책을 책상에 쌓인 먼지정도로 안다.

‘어쩜 이래?’ 하는 황당함 내지 짜증이 

준히 있어 왔던 것은 사실이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한낱 독서쟁이일뿐 독서가는 아니다. 

여느 독서가들과는 달리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책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부류에 내가 끼어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 애들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량이 적어서 그렇지 성경책은 매일 빠짐없이 읽을 뿐더러 

심지어 묵상한 것을 공책에 쓰기까지 한다! 

자기 엄마, 아빠가 매일 새벽마다 그렇게 하는 것처럼. 

독서하는 모범은 따르지 않아도, 

묵상하는 모범은 본받고 있으니 

책을 읽지 않는다는 타박은 입 밖으로 꺼낼 일이 아니다.



묵상가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여러 정체성들 중에 하나다. 

묵상가는 묵상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전인격적으로 묵상을 하는 자다. 

그러고 보니, 

묵상에 있어서 나는 달걀이었던 적이 없다. 

처음부터 닭이었다. 

묵상을 하다가 묵상가가 된 것이 아니라 

묵상가로 부르심을 받은 후 묵상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묵상가로 부르심을 받기 전부터 

묵상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ㅎ~


오늘도 나는 묵상가로서 성경 말씀을 묵상할뿐더러, 

묵상가로서 책을 읽고, 뉴스를 보고, 

피아노와 기타를 치며 찬양하고, 청소하고, 

이웃들과 함께 말씀에 엮인 삶을 나눈다. 

그렇게 나는 묵상쟁이가 아니라 

묵상가로서 그 길을 누비는 중이다.






#Oct. 23. 2019.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