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9. 6. 30. 23:22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의 책,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역사상 심리학의 패권을 잡은 자는 단연 프로이트다. 

그것이 내가 대학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프로이트를 배운 이유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대학 전공이었던 유아교육학이 

프로이트를 편애한 것은 지당한 일이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따르면, 

유아기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적 시기이니 말이다. 

유아교육을 모든 교육학의 중심에 세우고 싶어 하는 무리들이 

프로이트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영리한 선택이다.


반면, 아들러는 미래에 방점을 찍은 뒤, 

현재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목적론자다. 

그것은  추상적 사고와 철학적 사유를 할 줄 아는 

어른(사회적 맥락 속의 개인)의 심리학이다. 

아들러는 프로이트가 만들어 

세상에 대량 판매한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를 주장한다. 

이는 분명 쓸모가 퍽 많은 이론이자 실천이지만, 

안타깝게도 결코 주(主)가 될 수 없는 만년 객(客)이다.



세상은 원인론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꾸준히 만들어져왔다. 

현재의 결과는 과거 원인의 산물이라는 것이 상식인 세상. 

그런 곳에서 나는 태어나 살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십 수 년 간 해온 성경 묵상이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를 꾸준히 형성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들러의 심리학이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은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들러의 심리학을 전적으로 옳게 여기는 바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원인론을 믿는다. 

하지만 결정론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목적론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활용(!)하는 것일 테다.


책은 원인론과 결정론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개인적으로 이 점은 몹시 탐탁하지 않다. 

과거의 원인이 현재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원인론다. 

반면, 결정론은 현재의 결과가 

과거의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견해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뭇 다르다. 


원인 A는 시간을 타고 결과 B가 될 수 있어도, 

현재의 결과 B는 과거의 원인 A에 의해서 결정될 수 없다. 

결과가 원인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과거의 원인 A는 현재의 B를 만든 

수많은 원인들 중 하나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B를 결정했다고는 것은 지나친 친 축소주의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생각해 보자. 

원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라는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따라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결과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범죄에 의해서만 결정되었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범죄가 하나님의 심판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차원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래의 구속(救贖)과 회복과 완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을 죄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하고 완성시키기 위해서 심판하신 것이다. 

예레미야나 이사야 선지자들은 이점을 확실히 증명해준다.


프로이트가 현재를 중심으로 

미래를 거세하고 과거에 집착했다면, 

아들러는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에 천착한다. 

프로이트의 세계에서 구원은 외부로부터 주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아기로 말구유에 태어나신 것은 그 때문이다. 


반면, 아들러의 세계에서 구원은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이루어가는 것이다. 

성도들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천로역정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와 아들러는 적이 아니라 

함께 어깨동무를 해야만 비로소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친구다.


상식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저항 심리학이라는 점, 

주어진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가에 초점을 둔 

하우(how)의 심리학이라는 점,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의지에 방점을 찍는 

용기의 심리학이라는 점, 

자신이 아닌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타인의 심리학이라는 점, 

수직 관계가 아니라 철저한 수평 관계를 강조하는 

대등 심리학이라는 점, 

행복의 근원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자에게 공헌 할 때 생긴다는 관계 중심의 심리학이라는 점, 

그리고 인생이 선이 아니라 점이라고 주장하는 

에네르기아적 심리학이라는 점에서 

아들러의 심리학은 각종 자기 개발서들의 방대한 원천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던 

바운더리(boundary) 개념이 아들러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책에서는 사용한 ‘과제 분리’라는 말의 다른 번역이 

‘바운더리 설정’이었던 것이다. ㅎ~


그나저나 어쩌다 아들러는 

용기를  수많은 덕목들 중 제일 덕목으로 선택했을까? 

권세를 잡은 자들에게 인과관계로 

꽉 막힌 세상을 지지하는 프로이트는 꽤 쓸 만 했을 것이다. 

프로이트를 이용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권세를 잡은 것, 

너희들이 지배를 받는 것은 원인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해 왔고, 

그것은 어느새 상식으로 굳어버렸다. 

이와 같은 프로이트(상식)의 세상에 맞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용기다. 

밑천이 있어야 불어나는 자신감이 이미 파산 상태인 

평범한 자들에게 겨우 남은 것 한 가지가 용기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아들러는 그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원천이 되는 재료를 어떻게 조리하여 판매하는가는 

요리사(작가)들의 능력에 따라 천양지차일 것이다. 

그러나 아들러의 경우는 

날것 그대로 먹는 것이 가장 좋을 듯싶다. 

그럼에도 이 책 <미움받을 용기>는 꽤 잘 만든 상품이 분명하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도 되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시원한 가독성이었다.ㅎ~


아들러는 찻잔 속의 안전한 불만이 아니라 

찻잔 밖의 모험적인 불안정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허나, 이미 찻잔 밖의 모험적 불안정을 지속적으로 선택해온 나다. 

물론, 언젠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선교 생활도 

격렬한 조절과 치열한 동화를 거쳐 

고요한 평형의 상태에 이를 것이다. 

그러면 다시 찻잔 속의 안전한 불만이 휘몰아치기도 할 것이니, 

자기부정을 위해 용기를 내는 일에 게으르지 말 일이다. 




#Jun. 17. 2019.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