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보는
멀리서 바라보는
“결혼하면, 여자들의 우정은 끝이야!”
소인배들의 언행은 이런 식이다.
보잘것없는 자기들 우정을 빛나보이게 할 요량으로
약자들을 그림자로 깔아놓고는 짓밟는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이란 게
그 기혼여성들의 희생(자기 우정을 버림)과
헌신(그들의 우정을 지키도록)으로
만들어진 비지떡이 아닌가!
그렇게 소인배들이
자기들끼리의 우정을 상찬하면서 시끄럽게 굴 때,
약자들은 애정으로 주변을 묵묵히 돌본다.
3년이었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과 끈끈한 우정을 맺어왔다.
그들 우정의 핵심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것은 동상이몽이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열망했다면,
그들은 ‘유대 나라’를 갈망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게 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곁을 지키겠다던
저들의 맹세가 파도 앞의 작은 모래성임은 물론이었다.
반면, 폄하되던 여성들은 달랐다.
‘나라’에 대한 관심은 제자들의 전유물이었을 뿐,
여인들의 관심은 예수님 자체였다.
그래서 그분의 체포와 동시에
썰물로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과는 달리,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던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막 15:40-41)
성부와 성자의 우정은 위대했다.
성부가 꿈꾸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오르셨다.
그곳은 치욕과 고난의 옥좌였으나,
성부와의 우정을 위해 그것을 마다하지 않은 성자셨다.
이런 맥락 속에서 제자들을 거들어주자면,
그들이 예수님의 곁을 지키지 못한 것은
지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성부의 꿈과 제자들의 꿈은 질적으로 완전히 달랐다.
그 둘 사이에서 성자는 성부의 꿈을 선택했다.
제자들이 바라는 임금의 보좌가 아니라,
성부께서 원하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붙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제자들은 자기들의 꿈과는
완전히 반대편 길로 가시는 예수님을 놓쳤다.
우정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수많은 변수 속에서 목적이 슬쩍 달라지면
결국 깨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결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정이다.
반면, 여자들은 예수님 자체를 애정 했다.
그래서 비록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십자가를 선택하신 그분을
의리로 끝까지 따라갔던 것이다.
그렇게 내게 의리란
우정보다는 애정의 동반자로 보인다.
상대와 나누었던 꿈이 어긋나도,
상대가 큰 실망감과 상처를 안겨주어도
애정이 남아있는 한 의리는 지켜진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막 16:9)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죽음에게 야금야금 잡아먹히고 있을 때,
여자들은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일은 그분의 선택을 존중하는 일이요,
그분과 함께 고통을 당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분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활의 첫 증인들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에 참여한 자만이
부활의 기쁨을 증거 하기에 합당한 법이니까.
누군가의 고통을 기꺼이 들어주고,
고난 받는 자리에 함께 머물러 있어주는 것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런 일을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예외다.
그리스도인인 내게 애정의 원천은 하나님이다.
그분이 내게로 보내주신 사람들,
혹은 나로 만나도록 섭리하신 자들은
애정의 대상이 된다.
케냐 시절
에셀 나무 아래서 만났던 이들처럼.
에셀 나무 아래서
우리가 했던 일은 정확히 그것이었다.
말씀 묵상을 통해 포획된 각자의 고통을
서로 멀리서 바라봐 주는 일.
고통스러운 기억과 상처를 함께 목도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들이 풀어놓은 아픔은
야생짐승 같아서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나의 마음과 생각에
제멋대로 침범하여서는 난장판을 만들어 놨던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내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선을 그어도 그들의 고통은 번번이 선을 넘고,
생각을 잠식한 뒤, 마음에 멍을 들였다.
그러다 결국 에셀 나무가 저주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포기할 재간이 없어서 괴로운 날들이었는데,
에셀 나무의 주인이
긍휼을 포기할 줄 모르는 분인 까닭이었다.
얼마 전, 이제는 두 그루가 된
에셀 나무의 한 동료가 안부를 전해왔다.
그녀는 매주 에셀 나무 모임을 통해
동료의 피 흘리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 바라보는 중이라고 했다.
십자가 고통을 멀리서 바라봤던 여인들처럼,
그들도 서로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문득 떨어지는 눈물이 당황스러웠다.
이미 떠난 자의 회한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쉽지 않은 일을 기어이 해내고 있는
그녀에 대한 고마움과 자랑스러움 때문이었겠다.
그렇게 나는 케냐에서 꽃 피우고 있는 그들의 우정을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바라보는 중이다.
‘보내든지, 가든지!
보내는 선교사, 가는 선교사!’
푸릇했던 대학시절,
이것은 선교에 대한 우리들의 모토였다.
“니가 가라, 선교사로!”
그렇게 내가 보내줄 테니 네가 가라고
서로 등 떠밀면서 아옹다옹 웃고 떠들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대로 되었다.
가는 선교사로 내가 낙점되었고,
그들은 보내는 선교사가 된 것이다.
어려운 형편 중에도 보내는 선교사로
근면히 수고하고 있는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게 된다.
그렇게 여성인 우리들은 의리로 뭉쳐
지금껏 서로를 바라봐주는 중이다.
선교지에서 겪는 일, 특별히 고난은
그 어느 것 하나도 사사로이 처리될 수 없다.
제아무리 시시한 일도
특별한 사건이 되고 메시지로 귀착된다.
이유는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이다!
나와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다.
나는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은 역시 각자 삶의 자리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그들은 나의 고통과 고난에 참여하면서
서로를 향한 애정과 우정을 가꿔나간다.
장차 누릴 영광의 품으로 함께 달려간다.
#Mar. 25. 2019.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