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블라디미르와 우크라이나 선교
#4. 세인트 블라디미르(St. Vladimir)와 우크라이나 기독교
비잔틴 제국의 유산 가운데 하나는
우크라이나에 기독교의 복음을 전한 것이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우크라이나 복음 전파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블라디미르 대제(Vladimir the Great)라고도 불리우는
세인트 블라디미르(St. Vladimir, 958-1015)이다.
980년경 블라디미르는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포함해서 벨라루스, 러시아,
그리고 발틱 해안 지역에 이르는 영역까지 통합해서 다스렸다.
그는 원래 슬라브의 이교도를 따랐으나,
987년 기독교로 개종했고,
자신이 다스리던 키예프 왕국(Kievan Rus)을
기독교화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종교의 위치와 역할을 인정했다.
처음 그는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위한 연구를 했으나,
모슬렘 종교의 어두운 측면과 술과 돼지고기를
금하는 규례로 인해서 그것을 포기했다.
아울러 유대교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당시 예루살렘이 하나님에 의해서 버려진 상태라는
이해로 인하여 유대교 역시 수용하지 않았다.
기독교와 관련해서도 이미 당시 발전하고 있던
서방 기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동방 기독교의 의례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콘스탄티노플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세인트 블라디미르는 키예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기독교화하기 위해서 엄청난 결정을 했다.
“키예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곧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노예나 할 것 없이
모두 드니프로(Dneipr) 강으로 와서 세례를 받으라”는
선언을 했던 것이다.
이러한 블라디미르의 결정과 실천은 오늘날로 말하면
군중세례(group conversion)와 같은 것이다.
그의 노력은 기독교 복음이 키예프를 중심으로
동쪽(오늘날의 러시아와 알라스카 그리고 중국과 일본) 지역으로
영향력 있게 확대되는데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와 같은 세인트 블라디미르의 결정과 선언,
그리고 실천은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분명히 비평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는 “키예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려는 신앙적 노력”을 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아가 그는 자녀 교육에 있어서의 부모의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잘 훈련된 학자들과 교사들에 의해서”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어린이 교육도 강화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는
모든 거주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역사가 담겨져 있다.
즉, 블라디미르의 파격적인 선택으로 인해서
비잔틴 시대가 끝난 후에도
키예프는 동방교회의 성지로 발전했고,
기독교 신앙의 수많은 유산이 남아있는 등
기독교 선교의 중추 역할을 감당해 왔다.
*) 선교적 단상
오늘날 우크라이나 선교의 방향 중 하나는
공산주의의 오랜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경험하는 이들에게
기독교의 위대하고 찬란한 유산을 그들 스스로
다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들이 서있는 땅은 복음이 이미 지배했었고,
하나님을 아름답게 예배하며
삶으로 신앙을 증거 하기 위해 노력했던 곳이다.
그와 같은 찬란한 유산을
공산주의와 세속화의 위협 속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 역사와 전통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
이 땅에서 차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Jan 26. 2019. 사진 & 글 by 창고지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