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8. 9. 12. 16:42






팀 마샬의 책, <지리의 힘>을 읽고.



학창 시절 지리 과목을 좋아했었다. 

물론, 대부분의 애정이 그렇듯 

순전히 자발적 동인으로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덩달아 좋아했을 뿐이었다. 

어느 날, 한 학년 위였던 사촌이 지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모습이 퍽 근사해 보였던 것이다. 

그 후로 의도적인 호감을 가지면서 접근하자, 

야생동물 같았던 지리도 조금씩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성적이 올랐고, 

그것이 한층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어때서? 

그 때는 우물 위로 보이는 

손바닥 만 한 하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길이신 분을 만났고, 

그분은 정말 수많은 길들을 만들어주셨다. 

우물 밖으로 난 길들을 꾸준히 걷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걷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동남아시아를 떠나 북미를 지나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 끝자락에 도착해 있다.


현재 나의 터전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꽉 물려있는 상태다. 

이는 이 땅에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으로, 

아름다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러나 이는 막연하고도 희뿌연 느낌일 뿐이다. 

누구 하나 그들 간의 속사정을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이가 없어서 답답했는데, 

때마침 구원투수로 등판해준 책이 <지리의 힘>다. 

구원투수는 시원한 안타까지는 아니어도 

번트 정도는 감당해주었다.



저자는 국가들의 물리적 현실인 지리가 

그들 운명의 대부분 결정 짓는다고 주장한다. 

책은 그의 주장을 토대로 대륙별 대표 나라들을 예로 들어, 

현재 그들의 지정학(지리적 요인들을 통해 

국제적 현안을 이해하는 방식)을 즐비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어쩐지 ‘지리의 힘’이라는 골자가 

점점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위한 힘’이 

가오를 바짝 잡을 뿐이었다. 

그렇게 저자가 그려내고 있는 세상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와바리 싸움을 하는 

조직폭력배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주먹 꽤나 쓰는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자신을 시리지 않게 감싸주는 외투 같은 입술이다. 

우크라이나가 나토나 유럽 연합에 가입하는 것은

러시아로서는 외투를 잃는 일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혹독한 겨울을 나는데 필수적인 

자신의 가스 파이프를 빌미로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한 해 겨울을 지내본 나조차 

러시아의 가스 없는 겨울을 상상할 수도 없으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속절없이 보인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대신 추파를 던지고 있는 

유럽연합 역시 가스로 인하여 

러시아 눈치를 보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녀의 앞날은 더욱 어두워 보인다. 

어쩌면 그래서 요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분노(공식적으로 러시아어를 

금지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를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로 치환시켜 

열을 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크라이나의 국회는 

쉬이 권투장이 되곤 한다. 

러시아파와 유럽파로 나뉜 의원들은 

각각 헤드헌터와 바디브레이커로 분하여 

서로에게 주먹질을 한다. 

국회의장이 주먹을 날린 의원에게 퇴장을 명령하면, 

인파이터들은 KO 승이라도 거둔 것처럼 

실실 웃으면서 퇴장한다. 

부끄러움은 지켜보는 국민들의 몫으로 떨어진다.


키예프 대중교통비가 일 년 전에 비해 배나 올랐다. 

외국인인 나는 어리둥절하고 있으나, 

현지인들은 별다른 동요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 중에 젊은이들은 제 나라를 떠나 

서구로 건너가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고, 

나이든 자들은 담배만 벅벅 피워댈 뿐이다. 

자국의 이익을 지키고 나아가 키워낼 힘이 없는

변방의 나라는 태양을 빼앗긴 유럽의 겨울을 닮았다. 

유럽의 겨울은 

생명력과 색깔을 잃어버린 회색 무덤과 같다. 

그래서 어쩌면 역설적으로 

더욱 소망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은혜 외에 다른 구원의 가능성이 

모조리 등을 돌려버렸으니 말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어 

가독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의미를 따지면서 읽다, 생각하다를 

반복하길 좋아하는 나에게 가독성이라는 장점은 

큰 매력으로 다가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대륙과 나라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국제 정세 속 상황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퍽 유익했다.





#Sep. 10. 2018.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