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신부
돌아온 신부
그것은 자기기만이 생산하는 인기품목들 중 하나다.
받을 만해서 사랑도 받는 것이라는 착각.
언제부터였을까?
그런 저질 불량품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 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 같구나(아 1:5)
자찬(自讚)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술람미 여인의 고백은 겸손하기 짝이 없다.
진리가 서려있는 까닭이다.
대중은 그녀를 잡스럽기가
광야 한복판에 세워진 게달의 검은 장막 못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왕의 생각은 달라서
그녀의 어여쁨이 왕궁 휘장을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그녀의 손에 선택의 버튼이 있다.
대중의 평가냐?
왕의 견해냐?
두둥~
그녀는 검다.
그래서 아름답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기어이 아름답고야 만다.
왕 앞에 놓인 버저가 울렸던 것이다.
술람미 여인은 검기 때문에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는 거대한 편견을 무릅쓰고
결국 왕의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겸손의 승리였다.
자기 생각보다 왕의 뜻을 무겁게 여긴 까닭에
감당하기 벅찬 왕의 사랑을 최종 선택했던 것이다.
이후로 여인은 새로운 미의 대명사가 된다.
검음에도 불구하고 왕의 사랑을 독차지한
완전히 새로운 아름다움의 선구자가 된다.
한편, 겸손에게 보기 좋게 한방을 얻어맞고
줄행랑을 친 교만은 쉽게 물러설 줄을 모르는 종류였다.
머지않아 녀석은 자기기만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
여인 주변을 서성거렸다.
이윽고 여인의 눈에 녀석이 들었을 때,
그것은 여인에게 속살거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왕의 사랑에 감사하십니까?
정말 이해할 수 없군요.
당연한 일에 감사하다니요?
왕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당신은 원래부터 아름다웠으니까요.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고,
왕 앞에서 좀 더 당당하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여인의 기억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것을 놓칠리 없는 자기기만이었다.
여인은 왕의 사랑이 먼저였는지,
자기 아름다움이 먼저였는지,
왕의 사랑이 자신에게 아름다움을 창조해 주었는지,
아니면 자기 아름다움이 왕의 사랑을 창조했는지
헛갈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원래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놓고는
그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착각이 사실로 둔갑하는 순간,
자기기만은 권력을 움켜쥐고 여인의 마음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받을 만해서 사랑도 받는 것 뿐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힌 이후,
여인은 왕의 사랑이 흡족할 수 없었다.
불만족은 자기연민을 냉큼 불러들였고,
자기연민은 자신을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는
왕에 대한 섭섭함을 근면히 키워갔다.
섭섭함이 무르익자 그녀는 결국
왕에게 자신을 빼앗는 복수를 감행하고 말았다.
그러나 복수의 칼날이 심장을 겨눈 것은
왕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하찮은 촌부(村婦),
왕을 떠난 그녀는 정확히 그것이었다.
왕의 부재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소멸시켰고,
자기기만과 자기연민의 칼날에 베여 쓰러진 그녀는
뒤늦은 후회로 피눈물을 쏟았다.
그러는 중에도 여인의 생명은 붙어있었고,
두 다리의 힘줄은 아직 쓸만했다.
여인은 맨 처음 기억,
곧 자신의 검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면사포를 씌여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던 왕의 사랑을 기억했다.
그 기억을 붙들고 여인은 간신히 일어섰다.
그리곤 왕을 찾아나섰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자기 기억을 캐내고 캐내어 여인은 걷고 또 걸었다.
구하고 또 구했다. 찾고 또 찾았다.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의 눈에 왕이 들어왔다.
저만치 홀로 서있던 그의 눈이 여인과 마주쳤다.
단번에 알아본 그의 눈이 그의 발을 달음질 치게 했다.
얼싸 안은 그들.
해후에서 더 많은 눈물을 쏟은 쪽은
뜻밖에도 그녀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서 여인이 왕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왕이 여인에게 찾아진 것이었다.
촌부(村婦)가 왕궁 보좌에 앉아 있는 왕을 만나는 것은
해변가에서 잃어버린 동전을 찾는 것 보다 어려운 법이다.
왕이 그녀에게 찾겨지기 위해서
보좌에서 내려와 촌부(村夫)처럼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왕으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국 신부를 찾았으니
왕은 잔치를 베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왕후와 후궁과 시녀들의 시샘에도 불구하고
여인을 위한 성대한 파티는 열리고야 말것이다.
잃은 양을 다시 찾은 목자처럼,
잃어버린 동전을 다시 찾은 여인처럼,
잃어버렸던 탕자를 다시 얻은 아버지처럼
다시 돌아온 신부를 위해 거대하고 성대한 잔치는 열릴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15)
요즈음 내가 경계하는 작은 여우 두 마리는
자기기만과 자기연민이다.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해서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속이는 자기기만의 목과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징징거리는
자기연민의 목덜미를 붙잡아 훈계하는 중이다.
너희들의 견해는 틀렸으니
더는 조르지 말라고 크게 꾸중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이 쉬이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들과의 다툼이 끝도 없을 것임을.
아가서 안에서 기억의 버튼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을 눌러 리프레쉬한다.
검으나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
이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모두 그분의 은혜 때문임을 새롭한다.
어느새 자기기만과 자기연민이 조용해진다.
얼마만의 고요함인지!
#Dec. 9. 2017.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