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어린아이와 같이

창고지기들 2017. 10. 25. 16:49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원 보조 교사라도 된 것 같은 날들이다. 

노란색 버스를 마냥 타고 다니는 까닭이다. 

덕분에 개나리 유치원으로 교생 실습을 다녔던 

1993년이 기억에서 더러 회자되는 중이다. 

그 시절의 원생들은 이미 성인이 되었을 것이고, 

어린 교생들을 갈구던 샘들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겠다. 

그나저나 키예프는 어쩌다가 버스 색깔로 노랑을 낙점한 것일까? 



세 살 꼬마가 엄마의 무릎에 앉아 버스 창밖을 바라본다. 

“스마뜨리뜨!” 

먹이를 물고 날아온 어미 새의 주둥이를 바라보듯 

꼬마는 엄마의 검지가 가리키는 곳을 민첩하게 쫓는다. 

“끼오스크, 말치크, 디에보츠카...” 

엄마의 발음을 따라 오믈거리는 아이의 입술이 사랑스럽다. 

‘머지  않아 아이의 입에서는 유창한 러시아어가 쏟아져 나오겠지!’ 

슬쩍 아이가 부러워지는 건 

이제 막 탯줄을 끊고 태어난 러시아어 학습자의 지당한 감정일 것이다. 



러시아어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것, 

러시아어를, 그리고 그것을 배워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내겐 훨씬 어렵다. 

어쩌다가? 왜? 꼭 이렇게 까지? 언제까지? …. 

다채로운 의아함과 수도 없는 회의들이 학습의 항해를 훼방한다. 

이제 막 출항했을 뿐인데, 

러시아어의 끝없는 격변화와 바닥없는 동사들의 폭주는 

정서적 격랑과 합력하여 배를 집어 삼키려고 으르렁 거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막10:15-16)



노란색 버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세 살 꼬마가 고른 것은 없다. 

아이는 엄마를 고른 적이 없고, 성별을 선택한 적이 없으며, 

러시아 말을 선정한 적이 없다. 

아이가 한 일이라곤 받아들이는 것뿐! 

그저 작은 입술로 엄마의 말을 옹알옹알 따라하면서 

러시아어로 존재의 집을 지어갈 뿐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전부라고 믿고, 다른 것은 없다고 여기면서 

삶으로 적극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이 그것이다. 

선교도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어도 다르지 않다. 

그것이 나의 소명이요, 사역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질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의 둘도 없는 주체인양 으름장을 놓는 

어른 행세 일랑은 집어 치울 일이다. 

뭐든 자기 식대로 뽑고 고르고 선택 하고자하는 욕망일랑은 

사탕껍질처럼 내버리고, 막대 사탕을 물고 

마냥 즐거워하는 세 살 꼬마가 될 일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애써 보람을 찾고 

감사를 몸에 배어들게 할 일인 것이다.









무더위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가 없어 

흘러내리는 땀을 손부채로 말려가면서 참여했던 예배. 

지난(!) 여름 우크라이나 성삼위일체 장로교회에서의 첫 예배는 그랬다. 

생소한 러시아어와 어색한 영어 통역이 예배의 언어였던 탓에 

몸뿐 아니라 마음마저 몹시 끈적거렸었다. 

그 와중에 나는 퍽 요상한 경험을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로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이다. 

형편없고, 불편하고, 불쾌하며, 

게다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비록 문맹에 알아듣지 못한 귀머거리라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 게다.



노란 버스를 타고 교실에 앉아 있는가하면, 

외계어(?!)가 난무하는 성 삼위일체 장로교회에 출석하는 

나의 육신은 추위에 벌벌 떨면서 무럭무럭 늙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육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마음만은 회춘을 근면히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어린아이와 같이 

그분을 나의 아바로, 그분의 나라를 나의 기업으로, 

러시아어 공부를 나의 예배로 수없이 받아들이는 중이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엔트로피에 적면으로 맞서서 

날마다 새롭고 어리게 거듭 나려 

성령을 구하고 또 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Oct. 14. 2017.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