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의 경비(經費)
파티의 경비(經費)
셈이 흐리다는 말은 같잖은 핑계다.
사실은 십 원짜리 하나에도 벌벌 떠는 탓에
아예 손도 대지 않으려했던 것이다.
그렇게 가계부를 남편에게 넘긴 뒤,
나는 20년 넘게 부요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고집스럽게 가계부를 거머쥔 채 살아왔다면,
가난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간당간당하는 은행 잔고에 조바심치면서
늘 궁핍하게 살았을 나다.
가진 것 없이 부요하게(?!) 살았던 탓에
알뜰하지는 못했다.
차라리 검소하게 사치했다.
내게 재물은 모으는 것이 아니라
잘 써야하는 것이기에
써야 할 곳(예를 들면, 헌금, 음식, 책 등)에는
아낌없이 사치했다.
그러나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검소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검소함은 미워해도
알뜰함은 미덕으로 여긴다.
알뜰함을 마중물 삼아
낭비를 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살뜰한 소비자들은 물건의 개수 대비 가격을 따져서
커다란 상품 패키지를 구매하고도 즐거워한다.
싸게 샀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물건을 구입한
과소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알뜰함을 심어 낭비를 꽃피우다니,
소비사회는 콩 심은 데 팥 나게 하는 마법사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그런 류는 있었다.
계산에 능하고, 알뜰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
그의 이름은 빌립이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요 6:5-7)
사람들이 꾸준히도 꾸역꾸역 예수께로 밀려들었다.
기어코 큰 무리가 되어 버리자,
그분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흥겨운 무드,
한 여름 소나기처럼 즐거움이 흠뻑 내리는 파티.
그분은 그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과 공간, 사람들과 말씀까지 구비되었으니,
부족한 것이라곤 누구나 배불리 먹고 마실 음식뿐이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이
사람들 사이를 분주하게 누비고 있었다.
그들을 떠난 시선이 높은 곳에 있던 한 사람에게 가닿았다.
그는 사람들의 숫자를 꼼꼼히 세고 있었다.
빌립이었다.
잠시 후, 예수께 부름을 받고 온 빌립 앞에
난감한 질문이 떨어졌다.
“사람들에게 줄 먹을거리를 어디서 살 수 있을까?”
기가 찬 빌립은 잠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제자들 식비도 빠듯한 판에
수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시겠다고?’
그러면서도 영특한 그의 머리는
벌써부터 계산을 시작했다.
‘식량 배급소 수준으로,
허기만 가실 정도의 양을 준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이루어진 계산은 금세 끝났다.
“아까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봤는데요...
이 사람들이 한 입씩 먹을 빵만 사려고 해도
최소한 200일치의 일당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빌립은 다시 벙어리가 되었다.
그럴 돈이 있을 리 만무하니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싶은 마음일랑은
꼬깃꼬깃 접어두는 게 낫다는 결론을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백성들을 위하는 랍비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바로 그 때 안드레 편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도착했다.
음식에 대한 감사기도가 끝나자,
예수님의 손은
이미 화수분으로 변신을 마친 상태였다.
그분의 손 안에서 소박한 떡과 물고기가
끝도 없이 새끼를 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톱질, 대패질, 망치질을 하면서
단련된 팔과 손은 쉴 새 없이 떡과 고기를 떼어냈다.
빌립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쏟아지는 떡과 고기 앞에서
그의 똑 부러진 계산이 무색해졌다.
사람들은 식량 배급소 수준이 아니라
파티 수준의 푸짐한 음식을 너나없이 넉넉하게 즐겼다.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요 6:12-13)
최소한으로 알뜰하게 계산해도
늘 수지가 맞지 않는 인생이었다.
그런데도 넉넉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다음 달에 지불해야하는 월세가 없어서
쩔쩔 맬 때조차도 그랬다.
그분이 내게 주고 싶은 음식은
식량 배급소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내 삶이 파티가 되길 원하셨고,
그래서 언제나 열 두 광주리에 남을 정도의 것을
쏟아 부어주셨던 것이다.
단순히 수지맞는 것을 넘어서는
기적을 살아가는 중이다.
재밌는 것은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 열리는 그분의 파티에
자신의 몸을 두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분의 임재 안에 있을 때,
모든 날은 기적의 파티가 된다.
파티의 경비는 물론, 번번이 넉넉하다.
파티의 주인이 세상에 둘도 없는 갑부이고,
적어도 열 두 광주리 정도는 남길 만큼 손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티에 참여하는 자는
마냥 즐거워하는 것으로 예를 다할 일이다.
빌립은 밀려드는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빵과 고기를 근면히 생산하시는 주님과
그것을 부지런히 유통하고 운반하는 제자들을
셈하는 듯 지켜보았다.
그의 얼굴에 다크써클이 점점 진하게 번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알뜰하게 재고 따지다가
파티를 놓치면 큰일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그의 손을 잡고
파티 속으로 뛰어들었다.
싫지는 않았는지,
그는 기꺼이 파티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Jan. 30. 2017.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