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들의 입
젖먹이들의 입
그들은 집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낯선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와 요셉이 느꼈을 법한
두려움과 서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래도 오갈 데 없는 처지를 딱하게 여겼던 것인지
머지않아 방금 비워져 수리도 되지 않은
학생 기숙사를 내주었다.
아프리카 국제 대학교(Africa International University)
학생 기숙사 M1.
교수 사역을 위해 아프리카에 처음 찾아간 우리에게
그 곳은 일종의 마구간이었다.
주께서 세상에 피투되셨을 때 받아주었던 곳이
고작 마구간이었던 것처럼.
M1에 입주했을 때, 우리의 신세는 침입자였다.
그곳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렀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새까만 바퀴벌레 떼들에 맞서서
매일 사투를 벌여야 했다.
몇 주간의 소름끼치는 접전 끝에
싸움은 차츰 소진되어 갔다.
결국 마구간은 우리의 차지가 되었다.
“처음 선교사로 파송 받은 분들은
아기와 다름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 1, 2년 까지는
아기를 돌보듯이 선배 선교사들이
그들을 도와주어야 해요.”
안식년 중에 만난 선배 선교사님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언짢아졌다.
학생 기숙사 M1이 기억의
수면 위로 욱신거리면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 곳은 진짜 마구간이었다.
머물 곳이 없는 와중에 급히 마련된 공간이었을 뿐더러,
완전히 낯선 세상(선교지)으로 내던져진
갓난아기와 같은 선교사 초년생들이
잠시(?!) 의탁했던 곳이었으니 말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심이니이다
(시편 8:2)
한 두 살배기에게 생존은 문제의 전부다.
그래도 먹이고 보호해줄 양육자가
곁에 있으면 당분간은 다행이다.
책임져줄 어른이 없는 아기에게 낯선 세상은
어린 양 곁의 이리 떼일 뿐이다.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보호자가 없었다.
누구도 돌봐주는 이 없던 젖먹이 고아가
우리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생존을 넘어서서
선교 사역까지 감당했다.
고작 젖먹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말씀을 나누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주께서 젖먹이들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선교를 하신 것이다.
기적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 8:3)
케냐를 떠나오긴 전,
종종 네스트(NEST)를 방문하여 버려진 아기들을 돌봐주었다.
갓난아기부터 기거나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을 돌보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젖을 뗀 아기들의 경우 하루 식사는 세 번이다.
영특한 아기들은 마지막 스푼 앞에서 큰 소리로 울었다.
그 한 입으로 식사가 끝나면
다음 끼니때 까지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우는 아기를 달래가며 마지막 스푼을 입에 넣어준 뒤,
음식물과 눈물이 범벅된 아기의 얼굴을 닦아 주면
식사는 마무리 되었다.
아기들의 천 기저귀는 항상 묵직했다.
하루에 두 세 번 밖에 갈아줄 수 없었던 것이다.
일찍 부터 배변 훈련이 시작되는 것은 당연했다.
고작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들이 변기에 앉아 있는 모습은
슬프고도 치열한 삶의 그림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훈련 중인 아기를 보는 것이
마음 편할 리 없었다.
기저귀를 완전히 뗀 아기들은
다음 단계의 고아원으로 보내져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 4년 반 동안 우리는 빠르게 성장했다.
보호자가 있는 젖먹이들과 달리,
일찍부터 배변 훈련을 하여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되었고,
늘 허기진 상태여서 그분의 말씀이 주어질 때마다
한 스푼도 남기는 일 없이 모조리 먹어 치웠던 까닭이었다.
안쓰러워하고 마는(!) 값싼 동정 따윈
아기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호자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아기들은
속히 독립적이고 강해져야만 한다.
어쩌면 마구간에서 나와 정박했던 곳은
네스트였는지 모른다.
돌봐주는 이가 없어서
속성으로 자라도록 요구되었던 시간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예외 없이 지나갔고,
한 숨을 돌릴 수 있는 때가 가까스로 이르렀다.
그동안 돌볼 수 없었던 서러움과 섭섭함과
아픔이 근육통처럼 쑤시곤 했다.
내뱉는 말마다 신음소리 일색이었으나,
그것이 잦아들기 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씀이 당의(糖衣)로 그것을 감싸자
노래로 변신되었던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
머릿속에 아기들이 뛰어다닌다.
미소 천사 브라이튼,
벽 잡고 옆으로 걸어 다니던 피터,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조나단이 일어나 힘차게 달리고 있다.
달리면서 웃고 있다.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침처럼 흥건히 흘러넘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Nov. 18. 2016.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