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별곡(判斷別曲)
판단별곡(判斷別曲)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수행해야 하는 임무가 있었다.
시장을 누비면서 옷가지와 가방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교회에 입고 갈 옷이 마뜩찮다는
친정엄마의 볼멘소리 때문이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생긴 미안한 마음은
딸에게 적성에도 맞지 않는 쇼핑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그런 선대(善待)를 받아 마땅했다.
딸의 오래 묵은 기도제목을 따라
교회를 다니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엄마의 옷 투정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 집사님은 옷이 없나봐.
매주 똑같은 옷만 입고 나오더라고.
옷 살 돈이 없는 건지, 자식들이 무심한 건지. 쯧.
교회를 다니더라도 이것도 입고,
저것도 좀 입고 다녀야 면이 서는 법인데 말이야.”
머지않아 옷 투정의 정체가 발각되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판단이었다.
옷의 개수에 따라서 사람을 판단했던 탓에,
엄마는 더 많은 옷을 갈구했던 것이다.
그러자 문득 그녀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판단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면 자기 판단에 따른 정죄를 당하지 않으려고
매주 다르게 옷을 맞춰 입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로마서 2:1)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요? 그 생각만 하면 괴로워 죽겠어요!”
“이번 여행은 굉장히,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가.격.으로 이루어진 거예요! 정말이에요!”
어여쁜 그녀들의 고백 속에도 판단은 도사리고 있었다.
늘 상대방을 판단해왔던 그녀는
남들의 판단을 추측하면서 전전긍긍했고,
여행이나 다닌다고
상대방의 낭비(?)에 정죄를 일삼아왔던 다른 그녀는
자신의 여행의 알뜰함을 강조하면서
어떻게든 정죄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이다.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까지 항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들을 다독였지만 소용없었다.
판단의 덫에 걸려버린 그들의 귀는
이미 막힌 지 오래였던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게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태복음 7:1-2)
판단과 비판은 일종의 일련의 제의 행위와 같다.
그것들은 나를 제사장으로 삼은 뒤,
나름의 잣대를 도살 칼 삼아
상대의 옳고 그름을 무참히 도륙하고 판단한 후,
그에 대한 비판을 고깃덩어리처럼 제단에 올려놓는다.
불길 속에서 비판은 별스러운 향기를 만들어내는데,
교만은 그 아로마를 퍽 흡족하게 즐긴다.
결국 매번 판단과 비판에 손을 대는 것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만악(萬惡)의 근원인
교만 때문인 것이다.
틈만 나면 찌꺼기 같은 판단과 비판이 염치도 없이 새어 나온다.
판단과 비판이 쏟아질 때마다 서둘러 입을 꾹 다물기는 하지만,
입속에 가득한 토를 게우지 않을 도리는 없다.
판단과 비판의 근절을 위해라도
그것의 결국은 나를 베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일깨울 필요가 있다.
청산별곡을 개사한 계몽송이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판단별곡(判斷別曲)
살어리 살어리랏다. 판단 없이 살어리랏다.
진리랑 말씀이랑 먹고, 판단 없이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판단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라리 얄라셩, 알라리 얄라.
#Sep. 15. 2016.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