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6. 3. 9. 18:24






대신 갚기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태복음 18:21-23)



천국은 한 임금이다.

그의 일들 중 하나는 종들과 결산을 하는 것이다.

결산이 끝날 때마다 적자는 산처럼 쌓여갔다.

마치 빚을 지는 것이 임무인양

종들은 부지런히 부채를 늘려갔다.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겁도 없이

주인의 카드를 가져다 탕진했던 것이다.

천국은 지속적으로 거덜이 났다.

그런데도 천국의 주인은 모질지가 못했다.

불쌍한 마음만 한 가득이어서

빚을 지고 매달리는 종들을 번번이 용서해주었다.

급기야 그는 1만 달란트(16만년 치 일당)를 빚진 종까지 용서해주었다.

그러고도 파산하지 않는 것이 용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천국의 주인이 호구는 아니었다.

그도 원하는 것이 있었다. 보은(報恩)이었다.

그는 용서받은 종들끼리 서로 용서를 베풀길 염원했다.

상대방이 자신의 카드로 긁은 빚을

종들이 책임을 묻지 않고 대신해서 갚아주길 갈망했던 것이다.

주인처럼 상대방의 카드빚을 다 갚을 때까지

묵묵히 견디고 또 견디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의 부러진 갈비뼈를

살짝 긁힌 내 손가락만 못하게 여기는 것이 머리 검은 짐승이다.

그러니 상대가 떠넘긴 빚을 군말 없이 대신 갚아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는 편이 옳다.

1만 달란트를 탕감 받고 나온 직후,

종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100일 치 일당) 빚진 친구를 고소했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둬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배은망덕이었다.

이 일로 종은 다시 주인에게 소환 당했다.

주인은 배은(背恩)의 죄를 물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종을 감옥에 가두었다.

천국의 주인은 그런 분이었다.

자기에게 빚진 종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우나,

상대의 빚을 대신 갚으려고 하지 않는 종에게는 인색하기만 했다.



그들이 남긴 빚을 대신 갚느라 허리기 휠 지경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은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던 허리를 꺾어버리는 짓이었다.

원망하며 책임을 묻느라 용서를 날려버릴 테니 말이다.

용서를 위해 필요한 것은 일정한 거리였다.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떠넘긴 빚과 씨름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과 거리를 둔 채

나는 카드빚을 꼬박꼬박 대신 갚으면서 견디어 갔다.



대신 갚고 있던 빚들 중 더러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다 갚았다고 한다.

어느새 용서가 완납되었던 것이다.

언젠가 그 빚을 떠넘긴 자들을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갚아야 할 빚은 아직도 적잖이 남아 있다.

별 수 없이 7 곱하기 70번까지 견디는 수밖에.



가끔씩 천국 주인과 나 사이의 아득한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분도 그것이 필요하신지도 모르겠다.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

내가 그분에게 떠넘긴 빚을 대신 갚아내시기 위해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 역시 내가 떠넘긴 카드빚을

홀로 감당하기 위해 나를 멀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는 거리감을 견뎌야 한다.

깊은 침묵이 억울하게 상처 난 마음을

기어이 치료하고 회복할 때까지.

마음에 화해의 싹이 틔워질 때까지.




#Feb. 22. 2016.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