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6. 2. 22. 17:10





줌파 라히리의 책, 「축복받은 집」을 읽고.



Saaniye, Radhika.

처음 그 이름들을 들었을 때는

퍽 생소하여 발음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들을 정확히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하영양의 이야기 속의 주요 등장인물들인 탓이었다.

그들은 몹시 예쁜 인도 소녀들이다.

한창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까닭에

하영양은 한동안 그들을 부러워했다.



집에서 딸아이만 보다가

가끔 학교에서 그들을 볼 기회가 생기면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예뻐도 되나!’ 하는 감탄이 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하영양 앞에서 노골적으로 경탄을 하는 것은 금지다.

그것이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여 언짢음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나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하영아, 그래도 엄마 눈엔 네가 제일 예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과도하게 너스레를 떤다.

비록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임을 드러내기 위한 착한 과장이다.

아이는 피식 웃으며 좋아한다.



줌파 라히리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첫 단편 소설집,

「축복받은 집」으로 2000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불세출의 작품을 읽으면서

케냐에서 만난 인도인들을 떠올렸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인도인,

그것도 타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도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인도와 케냐는 동시에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

그런 까닭으로 퍽 많은 인도인들이

케냐에서 이민자로 뿌리를 내렸던 것 같다.

타고난 셈 개념 탓인지 그들은 케냐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

걸출한 슈퍼마켓 체인점들은 모두 그들의 소유이며,

보기 드문 값비싼 자동차를 운전하는 이들도 대부분 그들이다.

책속의 등장하는 상당수의 인물들은

인텔리하면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이런 경험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들은 도로의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과

‘리프트’를 ‘엘리베이터’라고 부른다는 것,

통화 중이라는 뜻으로 ‘인게이지드’ 대신에

‘비지’라는 말을 쓴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도 곧 알겠지만 북아메리카의 생활 속도는

영국과는 다르다”라고 쓰여 있었다.

“모두 정상에 올라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식 차 한 잔의 여유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본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중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의 영향 탓에 케냐는 영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북아메리카에서 살다가 케냐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소설 속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경험을 해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리프트라고 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으며,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앉아 자동차를 운전하는 법과

도로에서는 반드시 왼쪽 라인을 타야 한다는 것을 숙지해야 했다.

게다가 주인공에게 익숙했던 울워스는 내게도 친숙한 곳이 되었다.

물론, 값도 비싸고 취향에도 맞지 않아

물건을 구입했던 적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은

센 아주머니(고작 30대 초반이긴 하지만)였다.

타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향수병으로

자주 우울해하던 그녀에게 깊은 동병상련을 느낀 탓에,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성폭행으로 갖게 된 아기로 인하여

완전히 치료가 된 비비 할다르에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섭리의 아이러니를 보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피르자다 씨 가족의 안녕을 위해

매일 사탕 한 알을 먹으며 기도했던 소녀 릴리아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부재라는 아픔을 통해 비로소

그리움을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는 아름다운 법이다.

소년 로힌은 차라리 예언자였다.

섹시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에

불륜에 빠진 미랜더는 비로소 자신이 섬기던 우상,

곧 사랑의 낭만적 환상을 깨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산지브의 새집이 축복 받은 집인 이유는

곳곳에서 성상이 발견된 까닭이 아니었다.

일상의 작은 일, 곧 숨겨진 성상을 보물을 찾듯 찾아내

기뻐하며 향유하는 아내 트윙클이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집이 축복을 받는 이유는 그 집에서 사는 사람 때문인 것이다.

일시적인 정전을 통해 감춰왔던 비밀을 서로 나누었던

슈쿠마와 쇼바는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비밀을 나눈다는 것은 친밀해진다는 의미이고,

결국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마지막 비밀마저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식탁에 앉아서 함께 우는 그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빛이 드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를 대상화하여 멋대로 이용하려 했던

카파시씨와 다스 부인의 관계가 바로 끝장나버린 것은

차라리 은혜였다.

느닷없이 찾아온 시대의 변화는

매번 같은 사람을 피해자로 만드는 것인지,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난 부리 마가 안타까워

나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그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 게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나의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본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중에서



비록 세 번째이기는 하지만

마지막 대륙일지는 모르겠는 곳에서 나 역시 생각한다.

그동안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먹은 음식과 지냈던 집들을 떠올려본다.

확실히 평범해 보이긴 하지만 모든 게 상상 이상의 것이긴 하다.

뿌리 뽑힌 자로 살아간다는 것, 나그네요, 이방인이요,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늘 모험일 수밖에 없다.

그 길은 평범해 보이지만,

늘 상상 이상의 것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Jan. 29. 2016.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