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5. 11. 2. 17:59





독서(讀書)





금일도 책을 읽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집게와 엄지손가락이


책 잎을 어르다 따내면


식빵 같은 그대 살 냄새


감쪽같이 부풀어 오릅니다.


체취를 추스르려


한 권, 두 권 치대느라


고생인 게 손입니다만,


성긴 반죽으로


만족스러울 리가 있겠습니까?


허기지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


당신의 사랑인 탓이지요.





외로움이 쩔쩔매게 하고


두려움으로 어쩔 줄 모르며


불신앙에 의해 헤매는 노정(路程)이나


아예 길을 잃은 것은 아니랍니다.


그대 새끼손가락에 매인 빨간 털실이


책마다 묶여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빈방에 홀로 남겨져


책을 껴안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기에


단어와 구와 구절,


그리고 문장과 문단으로


촘촘히 나를 묶어 놓습니다.


당신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제는 책이 읽습니다.


당신도 나를 사랑하는 겁니다.








#Oct. 15. 2015. 사진 & 시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