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4. 10. 10. 19:06

 

 

 


#1.


제단 앞에서 에스라는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죄가 묻은 더러운 손이었다.

고결한 아론의 혈통이라는 자부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시나브로 내리는 어둠이 불결한 손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었다.

‘여호와의 손’ 마니아였던 에스라의 저녁 제사는

통곡과 눈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2.

 

for the gracious hand of his God was on him

(Ezra 7:9)


Because the hand of the Lord my God was on me

(Ezra 7:28)


Because the gracious hand of our God was on us

(Ezra 8:18)


The hand of God was on us

(Ezra 8:31)

 


바벨론에서 에스라는 뭐 하나 아쉬울 게 없었다.

초대 제사장 아론의 가문에다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까지 받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2차 포로귀환 때 유대인들을 이끌고

황량한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왔다.

학자이자 목사로서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그것을 동족에게 가르치고 싶은

뜨거운 열의 때문이었다(에스라 7:10).

이러한 열정의 에스라가 유독 열광했던 신학이 있었다.

‘하나님 여호와의 전능함’이었다.

그는 호위 무사 없이 진행된 2차 포로귀환,

제사와 절기의 회복, 성전 일꾼 모집의 전 과정을

‘여호와의 손(도움)’과 꼼꼼히 연결시켰다.

여호와의 손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의기양양했다.

 


성전 중심의 종교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되자,

자기만족이 에스라의 마음에 스멀스멀 고여 들었다.

사나운 소식이 에스라를 덮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깨끗한 성전 안과는 달리,

성전 바깥은 불의로 곪아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심심찮게 결혼했던 것이다.

이방인들과의 결혼은 단순한 국제결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방신을 섬기는 빌미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율법에서 엄히 금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적의 습격으로 뒷덜미를 물어뜯긴 에스라는

옷과 머리와 수염을 쥐어뜯으며

한동안 망연자실 했다(에스라9:3).

 


거를 수 없는 끼니처럼 저녁제사가 도착했다.

에스라는 제단으로 나아갔다.

의무와 책임의 사람에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은

하루를 넘길 수 없는 법이었다.

그는 무릎을 꿇은 뒤,

하나님 여호와를 향해 손을 들었다.

여호와의 손과 종교적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이스라엘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부정한 손을

거룩하신 하나님께 내밀었다.

그제 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 5:5)

 


#3.


에스라서는 이방인들과 혼인했던 사람들의 명단으로 갈무리된다.

제사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레위 사람,

노래하는 사람들을 거쳐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꼼꼼히도 밝히고 있다.

결말치고는 요상했다.

소위 말하는 열린 결말이라고 해도 썩 개운치가 않았다.

 


이상은 모두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자라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에스라 10:44)

 


마지막 문장 곁을 잠시 지키고 있을 때,

바다를 짜게 만들고 있다는 장본인이 기억의 수면으로 떠올랐다.

깊은 바다 속에 가라앉은 채,

끝없이 소금을 뱉어내고 있다는 동화 속 그 맷돌 말이다.

맷돌이 끊임없이 소금을 만들어 바다를 짜게 하듯이,

이스라엘은 꾸준히 이방인들과의 혼인으로

우상숭배를 재생산하는 중이라는 것이

에스라서의 결론처럼 보였다.

이 때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에스라의 손,

곧 에스라의 능력 밖의 일임이 공공연해진다.

 


#4.


손을 거둬들인 에스라는 무연히 제단의 불을 응시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불의 율동 위로 무언가가 어른거렸다.

자세히 보니 손이었다.

나무 위에 얹혀있는 손에는 커다란 못이 박혀있었다.

놀란 에스라는 몇 번 눈을 깜빡인 뒤 다시 제단의 불을 보았다.

어른거리던 이미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무가 탁탁 소리를 낼 때마다

주황빛 불의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질 뿐이었다.

에스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손을 들었다.

그것은 성전 중심의 종교 활동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손뿐만 아니라 얼굴도 구하겠다는 다짐이었다.

 

 

 

# Oct. 6.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