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패밀리(New Family)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29-30)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두 달 만에 돌아온 케냐의 집에는
먼지가 가히 산(?!)처럼 쌓여 있었다.
서둘러 걸레를 집어 들고 산을 깎아내자,
문득 어린 시절에 불렀던 동요가
콧바람을 타고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린 손등 위에 흙을 덮어
볼록하게 동산을 만든 뒤,
그것을 굳게 할 요량으로
토닥거리며 불렀던 노래가 잔망스럽게 느껴졌다.
몇 차례 노래를 반복한 뒤
조심스럽게 손을 빼내기만 하면,
맘씨 좋은 두꺼비는
정말로 새로운 토굴집을 선물해 주곤 했었는데.
그 땐 그것만으로도 좋았었지.
피식 웃음이 났다.
긴 우기에 접어든 케냐는 찬 기운으로 뚱했다.
좀처럼 환영해 주진 않는 그녀에게 오기 위해
버리고 온 가족과 뜨거운 햇살이 재빨리 그리워졌다.
주님이 아니었다면 전혀 볼 일 없었을 케냐.
밉상이었다.
팩하고 토라져 등을 돌리고 눕자,
저만치 멀어져 가는 부자 청년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던(마가복음 10:22)
주님의 시선이 곧바로 내 등에 꽂혔다.
무조건 반사로 돌아본 곳에는
말씀이 이미 당도해 있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29-30)
그러고 보니 그랬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주님을 위하여 고국의 집과 가족을 버리고 온
케냐에서 셈을 해보니 그랬다.
새로운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가 말도
못하게 풍성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마가복음 3:35)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가 되었으니 말이다.
내 형제인 풀러 사모 큐티 출신의 사모님들,
내 자매들인 오래 전에 사역했던
교회의 권사님과 집사님들,
새롭게 만나 어머니가 되어주시겠다는
샤론 선교회 권사님들.
이렇게 하나님 나라의 가족들을 수두룩하게 받았으니,
박해를 겸하여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테러와 강도의 위협, 에볼라 바이러스가 조장하는 공포,
이방인이기 때문에 받는 수많은 차별과
불이익과 냉대 등은 필수, 매우 필수인 것이다.
지금도 맘씨 좋은 두꺼비는
칭얼대듯 노래 부르는 이의 헌집을 새집으로 바꿔준다.
어릴 적엔 새 집을 얻기 위해
두꺼비를 열정적으로 찬양했었지만,
이 나이를 먹고 보니 집 보다는 역시 사람이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이 없다면
호텔 스위트룸(Sweet Room)도
비러룸(Bitter Room)으로 둔갑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게 된 것이다.
그 분께 육신의 가족을 드리면,
그 분은 하나님의 집에서 함께 살아갈
새로운 가족을 돌려주신다.
(물론, 그렇게 드려진 육신의 가족들 역시
그 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가는
은혜를 누린다. 정말로!)
그래서 나는 애써 나를 달랜다.
비록 케냐가 밉상이라도
그녀 때문에 새 가족을 많이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수지맞느냐고 말이다.
추운 날들이 한창이다.
화사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 때까지 얼어 죽지 않도록
새 가족들과의 추억으로
마음에 따뜻한 장작이라도 쉬엄쉬엄 피워야겠다.
#Aug. 7.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