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4. 4. 28. 16:51

 

 

 

 

부활절은 훌쩍 지나버렸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올해 부활주일의 본문은

이렇게 맺는다.

 

 

‘사도들은 그들(여자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누가복음 24:11-12)

 

 

본문의 여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다.

빛나던 두 사람이 주목하게 했던

살아생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곧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 일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을

그들이 기억하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말은

사도들에게는 허튼 소리였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무덤으로 달려갈 원동력을 제공해주었다.

 

 

예수님의 시신은 거기에 없었다.

시신을 두르고 있던 세마포만

풀이 죽은 채 정갈히 놓여있었다.

베드로는 무덤을 빠져나오면서

모처럼 이상히 여기는

생각이라는 것을 했고,

그의 발걸음은

고집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베드로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무덤 속에 계속 머물렀다.

미라처럼 예수님의 시신을

둘둘 말고 있던 세마포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시신 모양 그대로 놓여있었다.

예수님의 몸만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베드로와는 달리

그 분이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확신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허나 문제 역시 뜸을 들이지 않았다.

무덤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무덤에 갇혔다.

고국의 참사,

나이지리아의 200여명 여중생 납치와

남수단의 부족 학살,

그리고 날로 짙어져 가는 아비의 병세가

손에 손을 잡고

무덤 입구의 돌문을

닫아 버린 모양이었다.

 

 

무덤 속 어둠은

나를 삼켰고, 나의 언어를 짓이겼다.

내겐 고국의 참사도, 아프리카의 환난도,

아비의 고통도 담아낼 수 있는 말이 없어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게다가 우직하기만한 돌은

산 사람에게도 사정을 두지 않았다.

차갑고 습한 기운이 무릎까지 차오르자

나는 세마포라도 껴입어야 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갑작스런 음성에 놀라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간신히 중심을 잡았을 때,

차가운 돌바닥에 몸이 닿는 이미지가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더 오싹해졌다.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재차 음성이 들려왔다.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렸다.

어딜 둘러보아도 어둠뿐이었다.

두려움이 가슴 한쪽을 죄었다.

숨이 가쁘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해요!

하하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더해지자

심장의 방망이질이 폭주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펌프질을 하듯 숨을 크게 고르며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방망이질이

급격히 둔해지기 시작했다.

무덤 속 어둠도 눈 밖으로

꼬리를 감추기 바빴다.

움직이지 말라던 소리도

차가운 웃음소리도 어느새 흐릿해졌다.

그러자 새로운 어둠이

감은 눈 안에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잠시 후 어둠을 열고 누군가가 외쳤다.

 

 

“내 백성아,

바빌로니아에서 나오너라!

너희 목숨을 건져라.

여호와의 무서운 분노를

피해 달아나라”

(예레미야 51:45)

 

 

예레미야였다.

그는 해양 경찰관복을 입고

침몰해가는 거대한 바빌로니아 호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배에서 속히 나오십시오!

그리고 빨리 뛰어내리십시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발이 파블로의 개처럼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막힌 귀와 감긴 눈을 달고 달리던 발에게

머리는 돌문이 닫혀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헛짓거리를 한다고 타박했다.

발은 그런 머리도 데리고 달아났다.

 

 

얼마쯤 달렸을까?

감은 눈이 붉은 빛을 감지하자

발이 멈춰 섰다.

귀는 거친 숨소리를 부둥켜안고 있었고,

눈은 앞에 놓인 열린 무덤을

머리로 바쁘게 전송했다.

무덤 속에는 아직도 아무도 없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요한복음 20:15)

 

 

눈물을 훔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마리아에겐 보이셨던 부활의 주님이

내겐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마리아야!” 라고 다정히 부르시는

그 분의 음성도 내겐 들리지 않았다.

(요한복음 20:16)

 

 

무덤을 등지고 앉아서

한참 동안 눈물을 털어내자,

습관에 걸린 발은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카우치에 젖은 몸을 널어놓았을 때,

문득 쪽지 하나가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쪽지는 이렇게 말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마태복음 20:29)

 

 

키리에 엘레이손!

 

 

#Apr. 28.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

*)사진은 몸바사에 있는

Fort Jesus의 한 부분을 찍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