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지기들 2014. 1. 25. 17:49

 

 

 

 

 

 

#1.

 

 

 

상술(商術)은 만족하는 법이 없다.

늘 배고픈 상술은

돈이 된다면 노이즈(Noise)라도

꿀꺽 삼키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탄생하여

상술의 호적에 오른 것이

바로 노이즈 마케팅이다.

 

 

상품의 장점을 극대화 한다든지,

가격 경쟁으로 구미를 당긴다든지,

이미지 메이킹으로 환상을 자극한다든지,

신제품이라는 신선함으로 어필하는 대신에

노이즈(잡음, 악평)을 이슈화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낸 후,

욕하면서 소비하게 만드는

노이즈 마케팅.

 

 

그러나 상술의 어두운 그림자인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는

십일홍(十日紅)일 뿐이다.

누가 뭐래도 좋은 것, 선한 것이

오래도록 사랑받고 지속되기 때문이다.

 

 

 

 

 

 

 

 

 

 

 

#2.

 

 

 

NGO(Non Governmental Organization)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촉발하기 위해서

가장 애용하는 방법은 환난 마케팅이다.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환난을

단적인 이미지로 집약시켜 어필함으로써

사람들의 동정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환난 마케팅을 통해서

월드 비전과 컴패션과 같은

NGO 단체들의 돕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렇듯 환난 마케팅은

무심한 사람들을 흔들어 깨워

선한 일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적인 방법들 중 하나다.

그런데 환난 마케팅을 사용하는 것은

비단 NGO 뿐만이 아니다.

주로 어려운 지역에 점하고 있는 선교지에서도

이는 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3.

 

 

 

“사모님 건강은 어떠세요?

비자 문제는 어떻게 되었나요?

테러와 폭발 소식이 있던데

선교사님 네는 괜찮으신가요?”

 

 

 

당도하는 안부들은

주로 환난에 대한 것들이다.

어짜피 안부라는 것이

편안한지에 대한 소식을

묻는 일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때때로 집요하게 일관적인

환난에 대해 묻는 안부들은

연약한 나를 넘어뜨리곤 한다.

마치 내 존재가

환난 덩어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브리서 10:32-34)

 

 

 

그 날 새벽,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라는

말씀 앞에서 한 참을 서성거렸다.

그러자 오래 전에 들었던

한 집사님의 얘기가 떠올랐다.

 

 

 

“처음에 저는

드림 공동체를 무척 꺼려했어요.

말씀과 삶을 나누면서

눈물을 질질 짜는 모습이 싫었어요.

구질구질하고 칙칙하게 보여서

가까이 하기 꺼려졌었죠.

그런데 제가 힘든 일을 당한 후에

드림 공동체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누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 모임이 얼마나 축복인지 말이에요.”

 

 

 

집사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생명력 넘치는 우리 모임이

다른 이들에게는

가까이하기 꺼려지는 모임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쁨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환난과 고통 또한 껴안고자

함께 눈물짓던 우리 모임이

싫어 꺼려지는 모임이었다니!’

 

 

 

 

 

환희와 영광의 구경거리(소위 말하는 스타)가 아니라

환난으로써 구경거리가 되는 일을 뉘라서 좋아하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어느새

환난으로써 구경거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고 있고,

갇힌 자들을 동정하여 함께 살고 있고,

이리 가운데 파송된 양인 관계로

자주 소유를 빼앗기고 뜯기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은 기쁘게 당하지 못하고,

당할 때마다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쩔쩔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애써 환난 마케팅을 하고 싶지는 않다.

효과가 확실히 보장된 것이긴 해도 말이다.

왜냐하면 환난 마케팅을 하다보면

환난의 상을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얻어내려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4.

 

 

 

아이들은 작은 상처에도 호들갑을 떤다.

환난을 통해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아내고 싶은 속셈이다.

 

 

나는 그 분 앞에서 늘 아이다.

그래서 작은 환난에도 호들갑을 떤다.

아프다고 울고불고 한다.

그러면 더 낫고 영구한 소유인

그 분은 피식 웃으시며

상처에 호~ 하시면서 벤디지를 붙여주신다.

 

 

물론, 가끔 침묵하실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다.

눈물을 닦고 참고 인내하면

그 분은 반드시 다가와

환난으로 인한 상처를 고치시고,

그 분 자신을 내게

더 많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히브리서 10:36)

 

 

 

 

#Jan. 25. 2014.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