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성전에 오르며 부르는 노래

창고지기들 2013. 11. 26. 16:10

 

 

 


케냐는 투란도투다.

콧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차갑고, 잔인하기 까지 한 공주다.

그녀의 차가운 방 앞에서

우리는 꼬박 2년 동안

똑같은 아리아를 불렀다.

그러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Nessun dorma! 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Tu pure, o Principessa,

(당신도 마찬가지 입니다, 공주님.)

Nella tua fredda stanza

(당신의 차가운 방에서)

Guardi le stelle che tremano

d’amore e di speranza!

(사랑과 희망에 떨고 있는 별을 보세요!)

Ma il mio mistero e chiuso in me,

(그러나 나의 비밀은 내 가슴 속에 있고,)

il nome mio nessun sapra!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지요!)

No, no, sulla tua bocca lo diro,

(아니, 아니, 내 입으로 당신에게 말하게 될 거예요.)

quando la luce splendera

(빛이 환해질 때,)

Ed il mio bacio scioglera

(내 키스가 고요함을 깨뜨리면)

il silenzio che ti fa mia!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들 거예요!)

 

 

워크 퍼밋(Work Permit)은

시계 토끼마냥 구중궁궐로 숨어버렸다.

열리는 듯 하던 투란도트의 방이

다시 굳게 닫히자,

우리는 거의(!) 언다큐먼티드 피플

(undocumented people)이 되었다!

 

그러자 오래전에 좋아했던

홍영철 시인의 노래가

기억 저 멀리로부터 배달되었다.

 

 

너는 왜 열리지 않느냐

 

홍영철

 

 

어둠은 바람에 날리고

밤이 되었다

밤이 되었는데

너는 왜 열리지 않을까

열리지 않을까

너는 내게

온몸을 적시는 너의 노래 사이에서

나의 꿈들은 하나씩 떠오른다

떠오르므로 나의 살들은

비로소 나의 것이 되는 것을

이렇게 은밀한 밤이 되었는데

저 튼튼한 어둠 속을 달려가

이제 너를 위해 노래를 부르게 해다오

눈물처럼 즐거운 그대를

부르게 해다오

닫힌 너를

어둠은 바람에 날리고

밤이 되었는데

 

 

절대로 네 것이 되지 않겠다며

방문을 차갑게 닫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공주 앞에서

나의 마음은 평온하기만 했다.

2년 동안의 담금질로 인하여 생긴

방어 기제 때문일까?

아니면, 그 분께서 주신 평강 때문일까?

분별하려고 골똘하다가 그만 두기로 했다.

 

그러던 주일날 아침에

그 분이 말씀을 부어주셨다.

 

 

시편123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머리에 닿은 말씀이

발끝에 이르기까지 충만히 부어지자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푸치니의‘네순 도르마’로부터 시작된 노래가

홍영철의 ‘너는 왜 열리지 않느냐’를 지나

성령의 시편 123편에 이르러 무너져 내렸다.

 

 

바람과의 밀당으로

아보카도 잎들의 너울거림이 한창이다.

성전에 올라가기에 딱 좋은 날이다.

어느 때보다

그 분의 방문은 활짝 열려있고,

어느 때보다 그 분의 것이라는 소속감은

나를 따뜻하게 환대해주고 있으니,

나는 성전에 오르며 나지막이 노래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시편 126:6)

 

 

 

#Nov. 26. 2013.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