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tory

그리스도와 십자가

창고지기들 2013. 10. 30. 18:33

 

 

 

 

사이퍼는 말한다.

 


"나도 알아.

내가 느끼는 맛이 가짜라는 거.

진짜 맛있는 게 아니라

스테이크가 입에 들어가면

매트릭스가 내 머리로

'맛있다'라는 신호를 보내고

나는 그렇게 느끼는 거지.

이건 가짜야.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진짜라고 비참한 것보단

가짜라도 편한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날 매트릭스로 다시 돌려 보내줘.

그리고 영화배우 같은

유명한 인물로 만들어줘"

 

 

사이퍼가 경험했던 진짜 현실은

매우 초라하고, 거칠었으며,

차갑고, 몹시 불안정했다.

그에 비하면 매트릭스는(가상현실)

얼마나 호화롭고, 부드러우며,

따뜻하고, 안정적이었던가!

 

견디다 못한 사이퍼는

매트릭스로 갈아타기 위해서

현실을 배신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그는 뿌린 대로 거두며 쓸쓸히 퇴장한다.

 

 

1999년에 관람했던지라

모든 것이 가물가물하기만 한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독 사이퍼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의 흔들리는 눈빛이며,

스테이크를 맛보며 흡족해하는 표정이며,

설득력 있는 대사며,

어느 것 하나 잊지 못하고 있다.

 

멋진 주인공 레오가 아니라

악역 사이퍼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사이퍼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전서 1:23-24)

 

 

그리스도(왕)와 십자가(참형)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다.

그리스도와 십자가는

절대로 서로 섞일 일이 없는 말들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설의 하나님께서는

이 이질적인 말들을 한데 엮으심으로써

당신의 구원을 이루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구원의 복음이다.

허나, 그 때나 지금이나

모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저 쉰 소리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떻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을 수 있어?

백 번을 양보해서

만일 그리스도가 그렇게 죽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나라는 볼 장 다 본 거지.

그런 그리스도를 섬겨서 무슨 덕을 보겠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바울에게도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에게 그것은 완전한 구원의 복음으로 변했다.

 

하나님의 사도가 된 후,

그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한데 묶고, 연결시켜서

구원의 복음으로 선포했다.

이 때, 그가 걸어갔던 길은

휘황찬란한 꽃길이 아니었다.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광스런 사도에게 놓인 길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걸 맞는

고난과 핍박과 역경의 길이었다.

굽이굽이 피와 눈물로

얼룩진 길이었던 것이다.

 

 

케냐의 현실이

초라하고, 거칠고, 싸늘하며,

몹시 불안정하게 느껴질 때면,

매트릭스는 더 없이 고혹적이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스도만 갖고

십자가는 은근슬쩍 버리라고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유혹한다.

 

나약한 나는 흔들린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이혼시킬 수 있다는 착각,

십자가 없는 영광의 길이 있다는

착각을 믿고 싶어 안달을 한다.

 

그러면 저 멀리 기억의 늪에서

사이퍼가 은근슬쩍 기어 나온다.

그는 진흙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내 등을 두드리며 씨익 웃는다.

소름이 끼친다.

 

 

 

그 분은 이미 경고하셨다.

그 분의 길은

일류 호텔에 묵으면서

관광하는 길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 분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말이다.

 

그리스도와 십자가!

 

더 이상 미혹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두 언어의 합 속에

더욱 깊이 잠기고 또 잠길 일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Oct. 29. 2013. 사진(아래 것만)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