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의 집
#1.
못 말리는 비행사,
총알 탄 사나이2,
햄들의 침묵,
재밌는 영화...의 공통점은
패러디 영화라는 것이다.
패러디는 문학적 용어로
‘전통적인 사상이나 관념,
특정 작가의 문체를 모방하여
익살스럽게 변형하거나 개작하는 수법,
또는 그렇게 쓴 작품'으로 정의되는데,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나 광고 등
다양한 매체에서 사용된다.
엄연한 장르라고는 하나
나는 패러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대게
품질이 저질일 뿐만 아니라
억지웃음을 유발시키기 위해서
영화적인 감동이나 환상을
함부로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러디 영화는 내게
돈벌이를 위한 베끼기로 보이기 일쑤다.
영화가 예술을 위한 매체인 동시에
상업의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패러디 영화는 그럭저럭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패러디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소에
들러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2.
오리지널 하나님의 집은
실로에 있었다.(사사기18:31)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미가는
이 오리지널 하나님의 집에
이것저것 섞어서
패러디 성소를 만들었다.
신당, 레위인, 에봇,
드라빔, 새긴 신상,
부어 만든 신상
외적인 조건이
그럴 듯하게 갖춰지자
그는 생각했다.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사사기 17:13)
하나님의,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성소가
미가의, 미가에 의한,
미가를 위한 집으로 둔갑을 해버렸다.
그래서 미가의 집은 사이비다.
사이비(似而非)란 겉으로는 비슷하나
본질은 완전히 다른 가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궁금한 마음에
미가의 집에 들어가
찬찬히 둘러보았다.
조악한 에봇을 입은
어쭙잖은 제사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드라빔, 새긴 신상,
부어 만든 신상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제사장이 눈을 부라렸다.
멋쩍게 미가의 집을 나서면서
나는 신발을 털었다.
그나마 미가의 집은 순박한 사이비여서
비웃을 수라도 있었지만,
특SA 급 사이비여서
겉으로 봐서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집에 들어간다면
가볍게 비웃고 나올 수 있을까?
신을 신고 걸어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3.
실로에 있는
오리지널 하나님의 집은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하기가 편리하지 않다.
또한 하나님의 집에는
드라빔이나 신상 같은
인테리어 소품이 없어서
신전다운 면모를 찾아볼 수 없다.
가나안 신들의 것과 비교하면
솔직히 초라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중심이 하나님께 있다면
멀리 떨어져서 이용에 불편하다고
아무데나 마음대로 신전을 만든다든가,
신전다운 면모를 갖춘답시고
자기 취향대로 드라빔과 각종 신상을
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머나먼 순례의 길을
기쁜 마음으로 걸어갈 것이고,
하나님의 미니멀한 취향을 즐거워하며
심플한 하나님의 집을
있는 그대로 즐거워할 것이다.
사사기의 하나님은
이런 사이비 미가의 집을 지켜보시면서
시종일관 침묵하신다.
허나, 마냥 침묵하신 것은 아니다.
이후 그 분은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사이비와
베냐민의 패악을 심판하셨기 때문이다!
(사사기 19-20)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사이비 미가의 집은
이 곳 케냐에도 심심찮게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쉬이 좌절하거나 절망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느긋한(?!) 주인은
그것을 반드시 다루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리라”
(마태복음 13:28-30)
키리에 엘레이손!
#Oct. 22. 2013.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