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마른 나날들
#1.
‘선택적 인식(Selective Percep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정보들 중에서
자신의 관심이나 가치체계에 맞는 것들만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는
더운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케냐 나이로비가
아무리 춥다고 말해도
선택적 인식을 통해
이 정보는 자동 탈락되나 봅니다.
“많이 더우실 텐데 어떻게 지내세요?”
라는 고마운(!) 안부를 들을 때면
선택적 인식의 파워를
다시금 절감하게 됩니다.
6월부터 시작된 케냐의 추위는
8월인 지금 극에 달해 있습니다.
날마다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하늘 아래서 잔뜩 웅크리고 살다보면
9년 가까이 공짜로 받았던 은혜인
캘리포니아의 쨍쨍한 햇살이
마냥 그리워집니다.
결국, 추위를 피할 요량으로
나무를 때기로 했습니다.
케냐의 집들은 특별한 냉난방 시설이 없이
시멘트 벽돌을 척척 쌓아 금방(!!) 짓는데,
다행이도 벽난로는 만들어 놓습니다.
요즘 남편이님은
도끼질 하는 마당쇠로
열연을 하고 계십니다.^^;
덕분에 우리는
따뜻하게 나무를 때면서
옥수수랑 고구마를 구워먹는
잔재미를 누리고 있답니다.
^0^
#2.
에디오피아에 인제라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양푼이 비빔밥이 있다!!!
2달이 넘는
기나긴 아이들의 여름(?) 방학!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이것저것 메뉴계발을 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양푼이 비빔밥은
반응이 꽤 좋았던 메뉴였습니다.
ㅎㅎ~
밥 위에 나물 반찬을 쓸어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 넣어 쓱쓱 비벼
한입씩 털어 넣으면,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족 공동체임을
뜨겁게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외에도 반응이 뜨거웠던 메뉴는
팝콘 치킨과 드럼 스틱 튀김,
돈가스, 떡볶이, 팬케이크 등입니다.
주로 튀김요리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추운 건기를 지나다 보면
기름기가 굉장히 당기게 되니
별 수 있나요?^^;
#3.
몇 주 전 마켓에 갔다가
한국의 깡(!)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유레카!”
아르키메데스나 되는 양
기쁨의 환호를 지르며
감자로 만든 애랑
고구마로 만든 애를
바구니에 집어 담았습니다.
그렇게 깡들을 담으면서
왜 새우로 만든 애랑
양파로 만든 애는 없지? 하며
아쉬워 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우리는 깡들을 하나씩 털면서
향수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깡들!
요즘은 사다 놓기가 무섭게
깡들이 말라가고 있으니
깡(!) 마른 나날들입니다.^^;
#4.
요즘 저는 빨래를
밖에 널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은 벼룩이랑 해충 걱정에
집안에 꾸역꾸역 널었는데 말입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동네 어른들이
흐르는 개울물이랑, 쨍하고 뜬 햇살을
무척 아까워하시는 모습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땐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샌 그 분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쨍하고 나온 햇살을 보면서
빨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햇살을 무척 아까워하거든요.^^;
빨래를 해서
탁탁 털어 하나하나 빨래 줄에 널면
햇님이 호호 입김을 불어주고,
바람님이 살랑살랑 흔들어
빨래를 보송보송 말려줍니다.
해질녘
잘 마른 빨래를 거둬
차곡차곡 개다보면
어느새 손 안엔
그 분의 은혜가 가득 묻어납니다.
흐음~~
그렇게 은혜로 말려진 빨래를 입고
아이들은 하루하루 커가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Aug. 7. 2013.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