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arT

거리의 신비와 우울

창고지기들 2013. 2. 23. 05:25

Mystery and Melancholy of a Street,  Giorgio De Chirico,  1914

 

 

 


#1. 거리의 신비와 우울

 

기형적인 원근법으로 그려진

커다란 건물들로 쩍쩍 분할된

조금은 비릿한 노랑 길을 따라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갑니다.

 

그 소녀는 마치 그림자 나라의 사람처럼

온통 그림자 실루엣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저 쪽에서 부터

계속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옆에는 커다란 수레가 있는데,

그것은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연결된

터널같다는 느낌을 던져줍니다.

 

암튼..

소녀는 그 터널이 아닌

비릿한 노란색 길을 거슬러 올라가려 합니다.

그런데 불쑥 저 편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불안스레 말입니다.

 

이제 캔버스에 초침을 가동시키면

그들은 곧 어느 언저리에서 부딪히게 되겠지요?

그러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물론 어떤 일이 일어날런지는

그림을 보는 관객의 옛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천, 수만개로 상상되어지겠지요.

 

아~~~그런데...

그 일이 터지기 전에

모든 것이 캔버스 안에 멈춰져있으니

이 불안은 아마도 영원히 계속될 듯 싶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제게 이 거리는

마냥 신비롭고 우울해 보입니다..

 

 

 

 

#2. 나의 상상


 

저도 저 소녀 마냥

멈추면 곧 쓰러져 버리는 굴렁쇠를 굴리며

불안스레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저 모퉁이를 돌면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앞에서 울컥 멈춰 설 것입니다.

 

그리고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곧장 그에게로 달려가 안길 것입니다.

 

굴렁쇠를 굴리기 오래 전부터

굴렁쇠에서 자유케 하실 그분을

저는 기다려 왔으니까요.

기다리는 내내 그 분을

온 가슴으로 알아왔으니까요.

 

그리하야~

제 거리는 신비와 우울을

사쿠라처럼 하얗게 떨어뜨리며

환히와 감격으로 출렁일 것입니다.

 

 

 

-----# Jul. 29. 2006 글 by 이.상.예.-----

 

 

 

미술계의 프로이트 키리코.

그의 그림은 프로이트 앞의 꿈처럼

해석되기를 갈망하는 베일을 쓴 미망인이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앓던 시절,

나는 그의 심란한 노랑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노랗게 물든곤 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노랑물이 다 빠져버린 어느 날

나는 위의 글을 남겼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가끔씩 굴렁쇠를 굴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볼 때가 있다.

떼굴떼굴 구르는 아이들의 굴렁쇠는

아이들의 미소만큼이나 반짝거린다.

 

허나,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아이들 앞에 어려있는

검은 그림자로 인하여

나는 심란한 눈을 감지 않을 수 없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노랑이 다 똑같은 노랑이 아니고,

검정이 다 똑같은 검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나는 방향을 틀어

수레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한 번도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말이다.

 

그 곳은 마치 '사자, 마녀, 옷장 이야기'의

커다란 그 장농처럼

나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고 있다.

 

흐음~
 그 분과 함께

그 분께로 향하는 길은

이렇듯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인 것을!

 

 


#Feb. 23. 2013.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