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신비와 우울
#1. 거리의 신비와 우울
기형적인 원근법으로 그려진
커다란 건물들로 쩍쩍 분할된
조금은 비릿한 노랑 길을 따라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갑니다.
그 소녀는 마치 그림자 나라의 사람처럼
온통 그림자 실루엣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저 쪽에서 부터
계속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옆에는 커다란 수레가 있는데,
그것은 마치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연결된
터널같다는 느낌을 던져줍니다.
암튼..
소녀는 그 터널이 아닌
비릿한 노란색 길을 거슬러 올라가려 합니다.
그런데 불쑥 저 편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불안스레 말입니다.
이제 캔버스에 초침을 가동시키면
그들은 곧 어느 언저리에서 부딪히게 되겠지요?
그러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물론 어떤 일이 일어날런지는
그림을 보는 관객의 옛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수천, 수만개로 상상되어지겠지요.
아~~~그런데...
그 일이 터지기 전에
모든 것이 캔버스 안에 멈춰져있으니
이 불안은 아마도 영원히 계속될 듯 싶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제게 이 거리는
마냥 신비롭고 우울해 보입니다..
#2. 나의 상상
저도 저 소녀 마냥
멈추면 곧 쓰러져 버리는 굴렁쇠를 굴리며
불안스레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저 모퉁이를 돌면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 앞에서 울컥 멈춰 설 것입니다.
그리고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곧장 그에게로 달려가 안길 것입니다.
굴렁쇠를 굴리기 오래 전부터
굴렁쇠에서 자유케 하실 그분을
저는 기다려 왔으니까요.
기다리는 내내 그 분을
온 가슴으로 알아왔으니까요.
그리하야~
제 거리는 신비와 우울을
사쿠라처럼 하얗게 떨어뜨리며
환히와 감격으로 출렁일 것입니다.
-----# Jul. 29. 2006 글 by 이.상.예.-----
미술계의 프로이트 키리코.
그의 그림은 프로이트 앞의 꿈처럼
해석되기를 갈망하는 베일을 쓴 미망인이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앓던 시절,
나는 그의 심란한 노랑을
제멋대로 해석하며 노랗게 물든곤 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노랑물이 다 빠져버린 어느 날
나는 위의 글을 남겼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가끔씩 굴렁쇠를 굴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볼 때가 있다.
떼굴떼굴 구르는 아이들의 굴렁쇠는
아이들의 미소만큼이나 반짝거린다.
허나,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아이들 앞에 어려있는
검은 그림자로 인하여
나는 심란한 눈을 감지 않을 수 없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소서!'
노랑이 다 똑같은 노랑이 아니고,
검정이 다 똑같은 검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나는 방향을 틀어
수레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한 번도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말이다.
그 곳은 마치 '사자, 마녀, 옷장 이야기'의
커다란 그 장농처럼
나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주고 있다.
흐음~
그 분과 함께
그 분께로 향하는 길은
이렇듯 상상을 초월하는 모험인 것을!
#Feb. 23. 2013.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