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booK

그리스인 조르바

창고지기들 2013. 2. 19. 17:41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처음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인 조르바’로 읽었다.

곧 책의 저자를 확인한 후에야

나는 책 제목을 똑바로 다시 읽을 수 있었다.ㅋ~

 

이 책의 저자는 니코스 카잔차스키다.

그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던 작가이자,

카톨릭에서 금서로 지정한 책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쓴 작가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그는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원작자로

꽤나 이름을 날렸었다.

 

상연 금지를 외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던

한국 기독교계의 움직임과는 달리,

나는 그 영화를 꽤나 고마워한다.

왜냐하면 그 영화를 통해서 나는

그 당시 까막눈이다시피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 이해에

조금이나마 눈을 떴기 때문이다.

 

나를 길러왔던 교회는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가지신 분이라고 가르쳤지만,

암묵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했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그 분의 인성을 부족하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암튼,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그리스인이었던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서

지극히 그리스인다운 사람을 보여주고 있다.

지극히 그리스인다운 사람이란

바로 ‘땅의 사람’이다.

(조르바에 대해서 저자는

‘모태인 대지에서 아직 탯줄이

채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스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무척 짧다.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과

그리스 신화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신(神)마저 인간화시켜버리는

초강력 인본주의자들이라는 것.

 

그래서였을까?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조르바를 통해서 땅의 사람의 전형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조르바는 실제 인물로서

니코스 카잔차스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인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한다.)

 

 

그러면 땅의 사람인 조르바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다.

그는 세상을 머리(책)가 아니라

몸을 통해 배워서 아는 경험주의자이며,

음식(고기와 술), 음악(산투르), 춤, 파티,

수많은 여자들과 수많은 일들

그리고 현재(신비)를 귀히 여기며

철저히 즐길 줄 아는 쾌락주의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죽는 것보다 늙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더 창피해하는 60살이 넘은 노인이다.

그런 그에게 세상은

언어로 가둘 수 있는 추상적인 곳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새롭고 흥미진진하며,

또한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곳이다.

 

 

 

니코스 카잔차스키가 생전에 남긴

묘비명은 이렇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어쩌면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스키에게

자유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단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르바를 소재로 이런 소설까지 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묘비명을 읽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영혼의 경사를 타고 고여 든다.

땅의 사람은 자유 할 수 없기에 말이다.

 

 

바라는 것으로부터 끊어지고,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풀려난다고

자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르바처럼 방랑자가 되어

이 여자, 저 여자,

그리고 이 일, 저 일 바꿔가면서

자신을 묶고 속박하려는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해도 자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는

최상의 무엇을 바라고,

최고의 무엇을 두려워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자유의 여러 사전적 의미들 중

법률에서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법률의 범위 안에서(관계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

 

 

보이지 않는 법률의 범위 안에서만

사람은 비로소 자유를 누리고 향유할 수 있다.

이 때 법률이란 최소한의 것이라기보다는

최고의 것이고, 최상의 것으로써

기꺼이 즐겨 따를 수 있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땅의 사람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묘비명에 빗대어

나의 자유, 그러니까

그 분의 은혜로 대지의 탯줄로부터 떨어져

하늘의 사람으로 진화(?!-성화)되어 가고 있는

나의 자유를  이야기 한다면 이럴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만 바란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한다.

나는 자유다.’

 

 

죽기 싫다고 발버둥 치다 죽은 오르탕스 부인,

먼 산을 마지막까지 바라보기 위해

창틀에 손톱을 박고 죽어갔던 조르바.

그리고 달리 구원할 방법을 몰라

그들을 그저 글로 남겼던

조르바의 보스(니코스 카잔차스키).

 

땅의 사람들이 모두 뜨거운 태양 아래서

어쩔 줄을 모르고 팔딱거리고 있다.

그들의 허무하지만 아름다운 비늘이 마르기 전에

그들을 하나님의 거대한 연못 안에

방생하고픈 심정으로 마친다.

 

 

 

#Feb. 19. 2013.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