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보물창고/HIS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창고지기들 2012. 11. 29. 20:45

 

 

 

 

“What is this?"

 

 

"Um…"

 

 

"What does it mean?"

 

 

"Um… um…

Do not enter?" ^^;;

 

 

"Yes, this is No Entry Sign."

 

 

 

희귀한 교통 표지판만

집중적으로 외웠던 탓에

정작 기본적인 교통 표지판 앞에서

나는 순간 당황했다.

각을 잡아 날 세게 다림질한

제복을 입은 케냐 경찰관은

머뭇거리는 내게 다시 물었고,

나는 더듬더듬 대답을 했다.

 

이후로 운전면허 시험을 보는 내내

‘No Entry Sign'은 눈앞에서 얼쩡거리며

히죽히죽 날 놀려댔다.

 

 

 

 

운전면허 시험을 보던 날(11월 28일)은

케냐에서는 보기 드물게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국적이야 어찌 됐든

백인 남자 한 명과 나를 제외하면

면허 시험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블랙이었다.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운전면허 시험을 치르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더욱이 면허 시험 과정을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은

오직 과거와 현재 뿐이라고 한다.

미래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시간이어서

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약속 시간 어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해서

현재의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북미 문화권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래는 다른 어떤 시간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북미 문화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잘 관리하고 경영하는 사람이

참 지식인이고, 전문인이라고 선전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북미 문화권에

몸과 마음을 담가왔던 탓에

미래는 나에게도 중차대한 의미다.

항상 미래를 예측하면서,

현재를 미래의 예측에 종속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열불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면허 시험 시간은 오전 8시부터인데

9시 30분이 지나서 시작하고,

공식화된 서류를 만들어 사용하면 될 일을

수많은 시간을 들여

번거롭게 시험 응시자들의 손으로

일일이 서류를 그리게 하고,

(그래서 시험 응시자들의 준비물에는

볼펜이 매우 필수로 들어 있다.)

이론 시험을 단숨에 해치운 이후

2시간 이상을 무턱대고 기다려야 하고,

이후 실기 시험은 어딘가로 끌려가서(?!)

스틱 차로 예민한 클러치의 눈치를 보면서

진땀을 흘려야 하고,

마지막으로 서류를 꾸미기 위해서

수차례 뺑뺑이를 돌아야 했던 시간들.

 

 

 

그렇게 나는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꼼짝 없이 불안과 초조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시험에 대한 긴장감 외에는

전혀 초조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아보였다.

그래서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No Entry!'

 

 

 

눈앞에서 자꾸만 이죽거리는

‘진입 금지 표지판’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저들은 들어가지 않는 미래에

나만 혼자 들어가는 탓에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구나!’

 

 

 

미래에 종속되어 사는 것은

현재를 누리며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현재는 이 땅에서 영원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현재를 오롯하게 누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고 미래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분은

다가올 미래를 예언하시면서

현재에서 미래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분이 요구하시는 믿음은

미래의 소망을 현재에서 역사하게 하고,

누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 진입 금지를 따라

현재를 충분히 누리는 동시에,

믿음을 통해 미래의 소망에

끊임없이 진입함으로써

현재에서 준비하고 겸비하는 일.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운전면허 시험장을 나오면서

나는 이 두 가지 일의 균형을

이 곳 케냐에서 잘 배워나가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리고 나의 운전면허 취득을 축하하는 듯

덩실덩실 춤을 추는 와이퍼를 보면서

남편이님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남편이님은 국제 운전면허증으로

손쉽게(!) 케냐 운전면허증으로 전환했음!>

 

 

 

 

“케냐에서 운전면허증을 따지 않고서는

케냐를 경험했다고 말하지 마시요~~~”

ㅋㅋㅋ

 

 

 

 

 

#Nov. 29. 2012.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