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쓰기
“푼구자 키도고!
(Punguza kidogo; 조금만 깎아 줘!)"
이는 케냐 상인들과 만나서
가격을 흥정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케냐 상인들은 가격을 높게 부른 후,
소비자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가격을 흥정하는 걸 하나의 문화로 생각한다.
정찰 가격에 익숙한 나에게 이러한 가격 흥정은
참으로 어려운 숙제 중 하나이나,
매번 터무니없게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반드시 해결해야할 숙제이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가격 흥정을 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물건의 적정 가격 선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바가지를 쓰게 되더라도
알맞게(!) 쓸 수 있다.
물건의 적정 가격 선을 알기 위해서는
역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케냐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바가지 쓸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8; 2:3)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최고의 가치, 최고의 가격표를 매기신다.
하지만 사탄은 그 가격표에 이의를 제기하며
가격 흥정을 시작한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닙니까?”
(욥기 1:9-10)
사탄은
욥의 가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꼬치꼬치 흠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소유물과
건강한 생명(욥기2:4)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욥에게 그것들을 빼앗으면
욥은 반드시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렇게 사탄은
창조주가 매기신 가치,
창조주가 걸어놓은 가격표를
믿고, 받아들이는 대신에
하나님이 잘못된 가격을 매기셨다고
가격 흥정을 하려다가 사탄이 된 것이다.
사탄처럼 케냐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본 내게
그 분은 욥기를 통해 말씀하셨다.
“네가 나의 땅 케냐를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며
나를 경외하는 아름다운 땅이 세상에 없다!”
그 분의 말씀 앞에서
나는 감히 이렇게 대들고 싶은
입술을 지우느라 진땀을 뺐다.
“에이~ 말도 안 돼.
쓰셔도 너~무 쓰셨다~
케냐가 온전하고 정직하다고요?
세상에 그런 케냐도 있나요?
있다면 그런 케냐는 어디에 있나요?”
케냐에 선교사 비자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는 선교사로서 케냐에 체류하며 사역하기를 원한다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라는 케냐 정부의 의중이었다.
소식을 듣고 나는 한 동안 흔들렸다.
그런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섬길 만큼
케냐가 가치 있는 곳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허나, 그 분은 분명히
케냐에 높은 가격표를 매기셨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이러저러한 케냐의 흠들을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과 가격 흥정을 하려 든다면,
나는 사탄처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가격 흥정은
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신을 담보로 자기 유익을 챙기기 위한
치열하고도 피곤한 싸움이다.
만일 서로를 믿고 신뢰한다면
가격을 흥정하기 위해서
쓸데없이 많은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전히 내 눈에 케냐는
하나님께서 매기신 가격만큼
가치 있게 보이지 않는다.
이는 내 안목이 비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단할 수밖에 없다.
비록 하나님의 가격표가 터무니없어 보여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바가지를 쓰기로 말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Oct. 18. 2012. 사진 & 글 by 이.상.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