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사역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누가복음 20:9-10)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무엇보다도 그는 주인의 신임을
충분히 받고 있었던
믿음직한 종이었을 것이다.
타국, 즉 국경을 너머에서
주인의 미션을 수행하는 일은
도주의 기회가 무궁무진했을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타국에서 그 곳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어쩌면 그는 외국에도 능통해야 했을 것이다.
암튼, 그 종은 주인의 손에 의해서
뽑힌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뽑힌 종의 미션은
포도원 세를 받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종은 결국 미션에 실패하고 만다.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누가복음 20:10)
받아오라는 세는 고사하고
오히려 농부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후
주인에게 쫓겨나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 주인이 좀 수상하다.
그는 계속해서 종을 두 번이나 더 보냈다가
똑같은 꼴을 당했고,
마지막에는 자기 아들을 보냈다가
아들이 살해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타국에서 오래 살아서
종들이 매 맞고 돌아온 것을
일종의 문화적인 차이라고만 여겼던 탓일까?
아니면 그 만큼 농부들을 믿었던 탓일까?
암튼, 애꿎게 매만 맞고
빈손으로 돌아온 종들이
남 같지 않아서 속이 쓰리다.
문화 충격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새로운 문화는 그저 ‘다른 것’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니 ‘받아들이라’고 말이다.
허나, 나는 그들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우리 가족이 새로운 문화인
케냐에서 받고 있는 고통은
‘다름(차이)’에서 온 것이 아니라
분명히 ‘틀림(불의함)’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소작농이었던 농부들이
타국에 있는 주인의 종들에게
매질을 하고, 능욕을 주고,
상하게 하여 내쫓은 것은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불의함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주인은 그것을 그저 문화의 차이로 여기고
자기 아들을 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농부들은 처음부터 타국에 있는 주인으로부터
포도원을 빼앗아 차지할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의 아들을 살해했던 것이다.
그런 주인을 보면서
아직 살아서 펄펄 뛰는 내 육체는
혀라도 끌끌 차주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나는 애써 혀를 꼭 깨문다.
농부들을 끝까지 믿어주는
그런 주인이기 때문에
나 같은 종도 쫓겨나지 않고
지금껏 주인의 그늘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말이다.
케냐에 온지 꼭 8개월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가 해온 사역이란
포도원 종들과 다르지 않은
매 맞는 사역이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만나
주인으로 섬기게 된 그 분이
케냐의 포도원에 세를 받아오라고
우리를 이 곳에 보내주셨다.
하지만 이 곳에서 우리가 한 일이란
이 곳 농부들로부터
이리 맞고, 저리 능욕 당하고,
이리저리 상처를 받는 일뿐이었다.
이것은 분명히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농부들의 불의함에서 오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들이
이미 흠씬 두들겨 맞은 후 쫓겨났다.
그런데도 주인은
우리를 이 곳에 보내셨다.
매 맞고, 능욕 당하고,
상하게 될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이 곳에 보내신 것이다.
그런 주인이 너무 야속하기도 하지만,
또 그래서 너무 감사하기도 하다.
그렇게 끝까지 이 곳 케냐를 믿어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분이
내 주인이라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것이다.
케냐의 한결같지 않음, 성실하지 못함,
믿을만하지 못함, 가변성,
불충함, 거짓 됨, 불의함을 대할 때마다
그 분의 한결 같음, 성실함, 믿을만함,
불변함, 신실함, 진실함, 의로우심이
선명하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런 곳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결국 당신의 의지로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그 분의 눈물겨운 사랑에
나는 그 분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요즘도
숱하게 매를 맞고 있는 중이다.^^;;
8개월 동안 쉬지 않고 맞았는데도
여전히 맞는 것을 보면
우린 맷집이 좋은 게 분명하다.ㅋ~
그래도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빨리 맞을 만큼 맞고 내쫓겨져
이전 보다 더욱 건강하게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기를 말이다.
키리에 엘레이손!
#Sep. 10. 2012. 사진 & 글 by 이.상.예.